예수님 시대 이스라엘 백성은 로마 제국의 정치 지배를 받으며 황제 숭배를 강요받았습니다. 로마 황제는 절대군주 체제로 드넓은 영토를 장악하고 있었지만, 언제 발발할지 모를 반란과 새로운 황제의 출현에 노심초사했습니다. 또한 이스라엘 내부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던 사제들은 합법적인 사제 가문 이외의 인물에게는 사제로서의 위상과 정당성을 주지 않음으로 기득권을 독점하고 있었고, 사회 지도자들과 결탁하여 자신의 입지를 공고히 하며 세상 속에서 하느님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이 시기 나자렛이라는 시골 출신인 젊은 목수의 등장은 분명 그들에게 놀랍고도 불쾌한 일이었습니다. 율법의 진정한 의미를 밝히며 기존 지도자들의 입을 막아버리는 권위 있고 명쾌한 예수님의 가르침에 사람들은 매료되었습니다. 또 율법을 잣대로 정결과 부정, 선과 악을 규정지으며 심판자로 머물 뿐 참된 죄 사함은 베풀지 못하던 사제들과 달리 엄중하게 용서를 선언하는 예수님을 통해 참된 자유와 해방을 체험한 군중들의 기대는 점점 커져만 갔습니다. 이런 백성들의 기대와 희망은 기존 기득권층의 안정된 삶을 위협하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러자 기득권을 독점한 지도자들은 새로운 경쟁자 예수님을 ‘유다인의 왕’이라는 죄명으로 처형하기에 이릅니다.
“당신이 유다인들의 임금이요?”
“아무튼 당신이 임금이라는 말 아니오?”
따르고 섬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죄인으로 만들어 처형하기 위해서 한 사람을 왕으로 둔갑시킵니다. 사람을 죽여서라도 가진 것을 지키고 싶어 했던 처절한 몸부림 앞에서 예수님은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황제로 자처하고 나섰던 적이 없었고, 그들이 쟁취하고 있던 것을 빼앗으려 한 적은 더더욱 없었습니다. 그저 당신의 나라, 하느님 나라, 참된 진리를 있는 그대로 소개하며 전했을 뿐입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을 온 누리의 임금이심을 고백하며, 세상 끝날 심판자요 왕으로 재림하실 주님을 기다리는 그리스도왕 대축일을 지냅니다. 예수님을 “온 누리의 임금”이라고 부르는 우리의 마음은 가진 것을 지키고자 예수님을 “유다인의 왕”으로 불렀던 사람들과 달라야 합니다. 처형하기 위해 부여한 칭호가 아니라 온전히 섬기고 따르기를 다짐하며 십자가 위에 계신 예수님께 “온 누리의 임금님, 나의 유일한 왕”이라 부를 수 있어야 합니다.
교구 성서사도직 담당 여한준(롯젤로)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