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오로라고 불리기 전 사울이라는 이름의 그는 예수님을 따르는 수많은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훗날 부활하신 예수님을 체험하고 난 뒤 회심하고 개종하였지만 동료들을 죽인 바오로를 환영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의 업적을 인정하면서도 언제든 기회만 되면 그를 없애 버리려고 벼르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였습니 다. 그런 상황에서 바오로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습니다. 그저 자신이 체험한 예수님의 말씀을 열심히 전파하고 본인의 과거를 잘 알지 못하는 새로운 곳으로 열심히 선교여행을 다니는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제가 맡은 소임은 교정 시설에서 징역을 살고 있는 수용자들과 함께 신앙생활을 하는 동시에 출소한 이들 가운데 오갈 곳이 없는 형제들과 같이 사는 것입니다. 이들을 반기는 이들은 거의 없습니다. 물론 일반 사회 보다는 교회의 시선이 조금 더 따뜻합니다. 하지만 그들을 위해 기도해 주거나 도움을 주는 것과 그 사람들을 진정으로 한 공동체로 받아들이는 문제는 완전히 다른 문제입니다. 아무리 하느님을 만나고 회심을 했다고 할지라도, 보통의 신앙인들보다 더 열심히 하느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여도 그들과 하나가 되는 것은 하느님의 은총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우리 형제들도 그것을 잘 알기에 감내하며 살아갑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말은 별로 없습니다. 그저 묵묵히 행동으로서 본인들의 바뀐 삶을 보여주려고 합니다. 그러다가 제풀에 떨어져 교회를 등지기도 하지만 하느 님을 믿는 이들은 어떻게든 하느님께 붙어있고 하느님 안에 머무르려고 애씁니다. 세상 가장 어두운 곳에서 자신을 구원해 주신 분이 하느님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세상 모든 사람들이 외면한다 할지라도 하느님은 자신과 함께 계신다는 것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수용자, 출소자들은 외롭고 힘들지만 하느님을 믿기에 하루하루 버티어 나갈 수 있습니다.
세상과 교회의 차가운 시선 속에서도 하느님께 붙어있으려는 이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또한 누구보다 강하게 하느님을 체험한 그들을 통해서 언젠가는 우리 교회가 더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기를 바라며, 수용자와 출소자가 교회 공동체에 받아들여질 수 있는 은총도 감히 청합니다. 아멘
교구 교정사목부장 | 김덕수 안드레아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