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루카 9,23)
지난 2022년 1월 산격성당에 처음 부임해서 오던 날, 성당 마당에 새로 오는 본당 신부를 기다리던 신자 분들의 모습을 보고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200여 명의 신자들이 떠나는 신부님을 아쉬움에 보내고는 얼굴도 모르고 누군지도 모르는 새로운 본당 신부를 기다리던 신자들이었습니다. 수많은 박수갈채와 환호 소리에 부끄러워 서둘러 성당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제대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데 저도 모르게 가슴이 뜨거워지고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왜냐하면 프랑스 선교 5년과 교구청 생활 3년 동안 본당 사제가 신자들의 사랑을 먹고 산다는 것을 잊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시금 목자를 찾고, 목자의 목소리를 따라 살아가는 양들의 모습을 보니 제 가슴도 기쁨과 설렘으로 벅차오르고 있었습니다.
신자는 사제를 필요로 합니다. 사제는 신자 없이 사목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제와 신자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 입니다.
오늘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대축일을 맞이하면서 우리나라의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모습 또한 사제와 신자와의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선교사 없이 자생적으로 시작된 천주교회 안에서 사제를 간절히 원했던 우리나라의 초기 교회는 처음으로 방인 사제 성 김대건 안드레아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전국 방방곡곡으로 흩어진 교우들을 위해 더 많은 사제
영입을 위해 애쓰시던 김대건 신부님은 관아에 잡혀 순교하게 되십니다. 김대건 신부님뿐만 아니라 수많은 신앙 선조들이 얼마나 사제를 필요로 했는가 생각해 봅니다. 또한 그 당시 산 속 고을, 고을마다 신자들을 찾아다니며 성사를 집전하고 죽음을 무릎 쓰면서까지 전교활동을 나섰던 신부님들에게 신자는 목숨을 바쳐서라도 지켜야 했던 하느님의 소중한 양들이었습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루카 9,23)
우리가 예수님의 뒤를 따르기 위해 날마다 져야 하는 십자가는 우리가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사제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처럼 지금도 신자들이어야 합니다. 신자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십자가 또한 하느님의 은총을 이어주는 사제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대축일을 보내면서 우리 신앙의 선조가 그러했듯이 사제를 귀하게 여길 줄 알고, 신자들을 사랑하는 관계를 만들어가면 좋겠습니다.
산격성당 주임 | 박준용 유스티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