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겉과 속이 다른 사람들 혹은 행동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습니다. 믿었던 사람에게 사기를 당하거나 가까운 관계여서 믿었던 사람이 나에게 악의를 품거나 가식적으로 대하고 있음을 알게 되면 허탈감을 맛보게 되고, 인간관계에 대한 회의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인간은 본래 이런 존재일까요? 그런데도 하느님께서는 이런 인간의 죄를 용서하시고 또한 한결같은 사랑과 자비를 보여주시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창세기에서는 이에 대한 해답을 인간이 ‘하느님의 모습’을 닮은 존재로 창조되었기 때문이라고 제시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영혼 안에 당신을 닮은 모습을 심어 주셨는데, 인간은 죄와 고통, 위선과 탐욕, 죽음의 한계 등을 초월하여 하느님만이 지니신 완전한 용서와 자비, 사랑과 나눔, 치유와 영생 등을 영위할 씨앗을 간직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독서에 나오는 창세기의 이야기를 토대로 볼 때, 인간이 만들어 낸 모든 관습과 전통은 하느님의 모습을 닮으려는 방향으로 나아갈 때 진정한 가치를 지닙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목숨처럼 소중히 지켜 온 율법의 정신을 하느님의 자유와 평화로 향하게 하지 않고, 자신들이 만들어 낸 율법의 형식 안에 가두어 두려는 위선적 태도를 비난하십니다 :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지만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다. 그들은 사람의 규정을 교리로 가르치며 나를 헛되이 섬긴다”(마르 7,6-7)
예수님의 비판은 오늘날 교회조차도 전통이라는 이름에 갇혀 전례 형식주의나 교회의 사업과 관리에만 몰두함으로써, 정작 상처받은 영혼들을 치유하는 사목에 무관심해지는 ‘바리사이들의 조직’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지켜야 할 계명과 관습 속에서 하느님을 닮아갈 부분이 무엇인지를 쉽게 잊은 채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를 돌아보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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