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께서 병자들을 고쳐주시는 기적에 관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치유의 기적이 일어난 이후에 상반되는 두 가지 행동방식이 나옵니다. 악령들은 예수님을 보기만 하면 ‘그 앞에 엎드려, “당신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하고 소리 질렀다’(마르 3,11)고 합니다. 이에 반해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당신을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엄하게 이르곤 하셨다’(마르 3,12)고 합니다. 좋은 일은 알리는 것이 인지상정일텐데 그 반응이 정반대로 나타나는 듯 합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마르코 복음에서 중요한 주제 가운데 하나로 등장하는 ‘메시아의 비밀’과 관련이 있는데요, 이 비밀이 드러날 때는 하느님께서 정하셨다는 것입니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지만, 그 때를 우리가 임의로 정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정하신 때, 곧 복음에서는 결국 ‘십자가에 매달렸을 때’가 아니고서는 ‘예수는 어떤 메시아인가’를 올바로 알아들을 수 없기에 그때까지 메시아의 정체를 함부로 발설하지 않고 비밀로 간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악령은 이 비밀이 공개되고 사람들이 믿음으로 깨달을 수 있을 그 때가 어긋나도록 훼방을 놓은 셈이 되고,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서 정하신 때를 의식하며 기다림으로써 하느님의 뜻을 지켜내려는 신앙인의 모습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새로운 한 해, 2023년을 살아가기 시작하였습니다. 우리들에게 이 시간은 어떤 때입니까? 하느님께서 이 시간을 통해 우리에게서 이루고자 하시는 일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이 새로운 때에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는 진리를 잘 드러낼 수 있도록, 지금 이 때에 우리에게 적절한 방법으로 하느님의 구원계획에 동참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코로나의 영향에서 벗어나기 시작하는 지금, 많은 것들이 나아지고 회복되리라는 희망과 기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북경 땅에서 살아가는 우리 신앙공동체도 이 시기에 맞는 노력을 통해 하느님께서 정하신 때에 맞갖은 모습으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저는 특히 공동체 속의 다양한 관계들, 공동체 안에서 풍기는 분위기와 온도(溫度) 등의 회복을 위해 우리 가까이에 있으면서 하느님께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는 이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기에 가장 적절한 ‘때’가 아닌가 합니다. 이러한 관심과 노력이 이웃들을 공동체로 돌아오게 할 뿐만 아니라 우리가 하느님께서 정하신 시간 안에서 살아가며 믿음 안에 성장하도록 우리 모두를 이끌어 줄 것이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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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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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