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가다가 제가 겪는 유혹(?)이 있습니다. 제가 종종 홈페이지에 강론을 게재하는 것을 읽으시던 교우들께서 ‘강론 계속 올리기 힘드시죠?’ 라고 말씀하실 때입니다. 부끄럽게도 숙제하듯이 강론을 적어 올릴 때도 있기 때문에, 어떤 분들이 저더러 힘들겠다 생각하시는구나 싶으면 저도 꾀를 부려볼까 하는 생각을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어쩌면 미사를 봉헌하고 강론을 하는 것은 신부에게 ‘직무(職務)’ 곧 책임을 지고 해야 할 일입니다. 미사 봉헌이 여의치 않은 작금의 상황에서, 이러한 교우들의 말씀에서 위로를 받을지언정 직무를 게을리하는 핑계로 삼지 않아야 한다는 마음을 다잡고 보면 이런 위로와 격려가 유혹하는 말로 들리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직무(職務)’,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자신의 욕심이나 바램을 채우기 위해 뒤로 젖혀둘 수도 없는 일이며, 힘들다고 외면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주님의 계명을 지키고 그 뜻을 받드는 일을 “(마땅히) 해야 할 일”(루카 17,10)로 여기는 종의 자세를 가르치십니다. 해야 할 일을 잘 해 낸 것이 뿌듯하고 보람된 일이기는 할지언정, 칭찬이나 인정을 받는다 한들 별 소용이 없습니다. 우쭐대어서도 안됩니다. 해야 할 일을 한 것 뿐이니 말입니다.
모든 정성과 노력을 다하여 하느님을 섬기고, 이웃을 나 자신만큼 사랑하라는 내용으로 요약된다는 주님의 계명은 우리에게 ‘직무’ 곧 마땅히 해야 할 일로 주어졌다고 복음은 말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사랑하기를 개인적 염원(念願)의 실천으로 여깁니까? 아니면 마땅히 할 일을 한 것으로 여깁니까? 이것이 주님의 계명에 대한 우리의 충실함을 가늠하는 잣대가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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