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성모 마리아의 탄생을 기념하는 축일입니다. 예수님을 낳으신 분이 태어나셨음을 기억하며, 인류가 예수님을 만나뵙고서 체험한 하느님 구원의 신비가 이미 그 어머니 더 나아가 우리가 헤아리지 못하는 어느때로부터 이미 준비되어 왔음을 기억하는 데에 이 축일을 지내는 의미가 있습니다.
오늘 복음 말씀은 마태오 복음의 시작 부분인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관하여 이야기합니다. 마태오 복음은 특별히 유대인들에게 예수님께서 구세주 메시아이심을 설명하는 책인데, ‘다윗의 후손 가운데에서 메시아가 태어날 것’이라는 유대인들의 믿음이 실제로 예수님에게서 이루어졌음을 먼저 강조하기 위하여 그분의 족보를 나열하는 것으로 복음서를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 내용 속에는 단 네 명의 여성이 등장합니다.
타마르(1,3)는 유다의 자식을 낳아주었지만 그는 유다의 며느리였습니다.
가나안 사람 라합은 여호수아의 시대에 이스라엘 민족이 예리코를 함락하는 데에 일조하여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땅을 차지하도록 도운 인물이며, 모압 사람 룻은 남편을 여읜 채 동병상련의 처지에 있던 유대인 시어머니를 끝까지 모시며 유대공동체에 기꺼이 남았던 사람입니다.(1,5) 그런 이방인 곧 하느님을 알지 못했던 사람이지만 이들을 통해 메시아의 혈통은 이어졌습니다.
마지막으로 마리아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명문 혈통도 아니고, 예수님을 잉태하는 과정도 인간적으로는 쉽사리 납득하기도 설명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을 통해서도 ‘메시아를 보내시리라’는 약속을 지키시고 또 이루실 수 있는 분이 하느님이심을 복음말씀은 역설하고 있습니다.
마리아의 탄생을 기념하는 것은 단순히 성모님을 공경하고 우러르는 것이 아님을 복음말씀을 통해 떠올려 봅니다. 성모님을 제대로 공경하고 우러르는 사람은 성모님을 통하여 놀라운 방법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루시는 하느님의 오묘한 섭리와 그 능력을 믿는 신앙을 굳게 지켜가고자 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섭리하심과 돌보심에 대한 믿음이 약해질 때마다 교회는 성모님께 대한 공경심으로써 이를 만회하고 추스르는 경험을 해 왔으며, 지금 우리도 그러한 노력과 정성이 필요함을 잊지 맙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