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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

 

대림 제3주일입니다. 벌써 대림환에 초가 세개나 켜졌고, 초 색깔은 점점 더 밝아지고 있습니다. 온 세상 구원의 빛이신 주님의 성탄이 그만큼 더 가까이 다가왔다는 뜻이지요.


오늘 복음은 이천 년 전 유대 광야에서 주님의 오심을 증언했던 요한에게로 우리를 이끕니다. 일상과는 거리를 둔 곳, 이집트를 탈출하던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의 백성으로 태어났던 바로 그 광야에서, 요한은 세상을 구원할 메시아의 오심을 사자후와 같은 울림으로 선포합니다.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마태 3,2) 부정한 동물인 낙타 털옷을 입고서(레위 11,4) 고행과 참회의 음식인 메뚜기와 들꿀을 양식 삼아 회개를 선포하던 요한의 모습은 죄인과 의인 모두를 구원으로 초대하시는 하느님의 자비를 사람들에게 보여주기에 충분했을 것입니다.


과연 온 유다 지방 사람들과 예루살렘 주민들은 요한에게 나아와 죄를 고백하며 세례를 받았습니다.(마르 1,5) 단순하고 소박했던 군중들이 회개하고 세례를 받고서 하느님의 용서와 자비를 가슴 가득 받아 안았을 때 느꼈을 기쁨이 충분히 헤아려집니다. 그런데 이런 기쁨을 누리지 못한 채 멀찍이 떨어져 있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바로 예루살렘에서 온 사제들과 레위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메시아보다 엘리야가 먼저 와서 그분의 길을 준비한다는 예언(말라 3,1; 집회 48,10)을 알고 있었기에 요한에게 “당신이 엘리야요?” 하고 묻기도 하고, 모세가 예언했던(신명 18.18) 바로 “그 예언자”인지 묻기도 합니다. 사실 요한은 분명 “엘리야의 영과 힘을 지니고서 백성이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갖추게 할”(루카 1,17) 예언자였고, 예수님께서도 “요한이 바로 오기로 되어 있는 엘리야다.”(마태 11,14)라고 말씀하신 바 있지요. 그러나 이리저리 재어보기만 하고, 믿음의 주도권을 남에게 넘기고서 스스로 결단하지 않는 이들에게는 구원의 확신이 허락되지 않습니다. 스스로 지혜롭다고 자처하며 진심 어린 회개로 응답하지 않는 그들에게 요한은 주님의 현존을 이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너희 가운데에는 너희가 모르는 분이 서 계신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오늘 제1독서와 2독서, 심지어 화답송과 복음 환호송까지 모두가 하나같이 ‘기쁨’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성탄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 그분을 기다리는 우리의 기쁨과 설렘이 정점을 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어머니이신 교회는 결코 그 기쁨을 강요하거나 맹목적인 믿음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다만, 사람이 되신 하느님, 갓난아기의 모습으로 오시는 주님의 사랑에 우리 역시 낮추는 자세와 회개로 응답할 때 얻게 되는 선물, 우리 존재를 통째로 바꾸어 놓을만한 구원 체험에로 우리를 초대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자선 주일입니다. 도움이 필요한 이웃에게 베푼 선행과 자선은 회개의 진정한 시작이기도 합니다. 나를 더 작게, 주님을 더 크게 드러내고자 했던 세례자 요한처럼, ‘가장 작은 이들 안에 계신 주님’을 위한 희생과 나눔을 실천하는 우리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강수원 베드로 신부

(2017년 12월 17일 대림 제3주일(자선 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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