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과 성부(聖父)와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알려주십니다 : "아버지께서 가지고 계신 것은 모두 나의 것이다."(요한 16,15)
예수님께서 당신의 것이라고 하는 아버지의 것은 무엇일까요? 하느님으로서의 완전함, 거룩함, 전능(全能)함, 선하심(善性) 등 어떤 능력과 권위, 힘, 특징 등이 ‘동등하고 닮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아버지께서 가지고 계신 것’에는 당신이 돌보고 구원으로 완성시키고자 하시는 피조물에 대한 사랑도 있습니다. 죄악에 빠져 허우적대는 사람에 대한 연민도 있습니다. 사람의 구원을 위해 그 삶에 개입하시는 진정성과 적극성도 있습니다. 이런 것들도 결국 예수님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서 생명을 불어넣은 것들을 모두 소중히 여기셨고, 죄인들의 회개를 간절히 원하셨으며, 회개하지 않는 이들을 위해 눈물을 흘리시기도 했습니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 가지고 계신 것은 모두 나의 것이다’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어떤 능력이나 권위의 공유(共有)를 뜻한다기보다는 아버지께서 뜻하시고, 원하시고, 사랑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이해하고 있는 ‘소통(疏通)’의 상태를 뜻한다고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오늘 삼위일체 대축일을 맞아, 하느님께서 삼위일체(三位一體)이심을 믿는 우리는 서로 모를 것도 없고, 모르기 때문에 오해를 빚거나 갈라질 일도 없는 ‘완전한 소통’, ‘완전한 이해’가 사랑에서 비롯됨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느님의 존재 모습은 ‘창조주’(성부), ‘구세주’(성자), ‘위로자’(성령)으로 달라 보일지라도, 언제나 삼위(三位)간의 소통과 친교,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소통과 친교로써 드러납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자 타인과 자신을 구별(區別)지으려 하면서 이를 ‘특성화(特性化)’ 혹은 ‘개성(個性)’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때로는 자신과 타인, 타인들 사이를 갈라놓으려 애쓰기도 합니다. 갈등이나 분열을 통해 이익을 취하는 사람도 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우리들과의 관계, 우리들끼리의 관계를 자연스런 일치로 이끄십니다. 하느님 존재의 본질은 사랑이며, 부족함이 없는 소통을 통한 일치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자녀들입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의 소통과 조화를 닮고 배우려는 사람들이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더 많은 이들과, 더 자유롭고 온전한 소통을 이루어가는 노력을 통해 하느님의 완전하신 사랑을 닮아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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