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르네상스 시대의 가장 위대한 화가이자 판화가로 불리는 알브레히트 뒤러라는 인물을 아십니까? 어릴적 뒤러는 화가의 꿈을 안고 고향을 떠나 도시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역시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한스라는 소년을 만나 두 사람은 이내 친구가 되었습니다. 둘 다 화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기에 정식으로 그림 수업을 받고 싶었지만 가난해서 학비를 마련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이 상의한 끝에 서로 제비를 뽑아 한 사람이 먼저 돈을 벌어 다른 사람의 학비를 대고, 이후 그림 공부를 마친 친구가 다시 학비를 대준 친구의 뒷바라지를 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제비를 뽑은 결과 뒤러가 먼저 공부를 하고 한스는 고향으로 돌아가 뒤러의 뒷바라지를 하게 되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뒤러는 금의환향했고,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도와준 한스를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한스는 고된 노동으로 손이 굳어지고 뒤틀려 이미 그림을 그릴 수 없는 처지였습니다. 뒤러의 뒷바라지를 위해 자신의 꿈을 접어야 했던 한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뒤러의 앞날을 비는 기도를 드리고 있었고, 이 기도를 우연히 듣게 된 뒤러가 눈물을 흘리며 그 친구의 숭고한 손을 세상에 보여주기 위해 기도하는 친구의 손을 스케치했는데, 그것이 뒤러의 가장 유명한 작품인 ‘기도하는 손’이라는 작품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십니다. 사람들은 환호하고 열광하며 성지가지를 흔들며 자기의 겉옷까지 깔아드리면서 예수님을 맞아들이고 있지만, 예수님은 이 입성의 길이 영광의 길이 아니라 당신이 고통을 받으시고 죽임을 당하게 될 수난의 길이라는 것을 아십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 길을 마다하지 않으십니다. 이 길이 우리를 구원에로, 영원한 생명에로 이끄는 길임을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뒤러의 이야기에서 친구는 자신이 희생하지 않으면 뒤러의 재주를 살리기 어렵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고, 자신은 그림을 그리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자신을 희생했기에 그 희생은 숭고한 것입니다. 하지만 친구가 아니라 하느님이신 분이, 우리의 재주를 살리는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영원한 생명을 위해서, 손이 아니라 당신의 목숨을 희생하셨습니다. 그러니 뒤러가 친구의 그 숭고한 손을 세상에 보여주고 싶어 위대한 작품을 남긴 것보다 훨씬 더 깊은 마음으로, 우리도 예수님의 이러한 희생을 세상에 보여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오늘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을 기념하며, 우리도 성지가지를 흔들며 예수님을 맞이했습니다. 우리의 이 ‘맞아들임’은, 당시 예수님을 맞이했지만 결국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쳤던 그 군중과 같은 모습이 아니라, 진심으로 예수님을 올바로 영접하는 합당한 ‘맞아들임’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대구청소년창의센터 센터장 | 박상준 가브리엘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