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의 이야기에서 간음하다 현장에서 적발된 여인을 예수님 앞에 끌고 온 사람들, 그들은 구실을 만들기 위해 한사람의 목숨도 희생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요? 어쨌거나 그들이 예수님께 대답을 요구하며 던진 질문은 여인을 죽여도 되느냐 아니냐의 형태로 전달됩니다.(요한 8,4-5) 반면에 예수님께서는 그 여인이 죄인인가 아닌가의 형태로 대답하지 않고, 우리 각자가 모두 죄인인가 아닌가를 생각하도록 반문(反問)하십니다.
다른 사람이 죄인임을 탓하기 이전에 나 또한 죄인임을, 행여나 내가 비록 지금은 죄인이 아니라 할지라도 하느님 앞에서 죄인이고 죄인일 수 있기에, 죄인으로서 하느님 앞에서 구원받아야 할 한 사람의 절박한 처지와 그 심경을 헤아릴 줄 알아야 할 것임을 예수님께서는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기도를 바칠 때마다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소서’ 하고 말합니다. 이 기도로써 우리는 하느님은 단죄하는 분이 아니라, 죄에서 벗어나 당신께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라는 분이시라는 믿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 믿음에 힘입어 우리는 용서받을 수 있으며 다시금 하느님을 찾고 의지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하느님 앞에서 죄인임을 스스로 고백하거나 시인할 때, 우리를 죄인으로 규정하거나 그로써 심판해버리지 않으시는 하느님을 만나는 곳이 고해성사의 시간입니다. 그 고해성사를 통해 용서받는다는 체험과 성사를 통해 얻는 은총도 오늘 복음에서 한 여인에게 건네신 예수님의 말씀,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너의 갈 길을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요한 8,11)는 말씀을 우리가 듣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저 여인과 같이 극심한 죄를 지어서는 아닐지라도 하느님의 용서와 자비에서 위안과 힘과 새로운 기회를 얻는 사람임을 잊지 않는 것은 중요합니다.
지난 얼마간의 시간동안 주변여건이 안정적이지 못하여 계획하고 있던 부활판공성사에 참례할 기회를 아직 갖지 못하고 있습니다만, 그럼에도 오늘 복음에 나오는 여인을 대하셨던 예수님의 마음과 시선이 여전히 우리에게 향하고 있음을 잊지 않고 부활을 맞이할 수 있도록 준비합시다. 아울러, 부득이 고해성사는 부활대축일 이후에 참례하게 되더라도, 악습 속에서 아파하고 힘겨워하던 우리의 모습을 가련히 여기시는 예수님의 사랑을 그때의 고해성사 안에서도 체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