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몇 년 전에 경추(頸椎)를 다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가끔 마주하게 되는 광경 중에 다음과 같은 장면이 있습니다.
1. 수녀님들과 같이 길을 걸어가는데, 제 짐을 수녀님들이 대신 들어줍니다.
2. 비교적 큰 모임이나 회의를 준비하다가 책상과 의자를 정리하는데, 제가 책상을 들어 옮기려고 하면 누님뻘 되는 자매님들이 허리아픈 사람이 책상을 옮긴다고 뜯어말리면서 본인들이 옮기시겠답니다.
우리끼리야 서로 이해할 수도 있는 일일 수도 있겠으나,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이런 광경을 본다면 어이가 없을 것입니다. 덩치 큰 사내가 자매들에게 짐을 지운 채 걸어가는 모습도, 무거운 책상을 옮기는데 아주머니들은 분주히 움직이는데 젊은 사내는 옆에서 빈둥빈둥하고 있다니 말입니다.
그래서 정말 몸이 많이 아프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다면 자꾸 몸을 사리는 것에 익숙해져 버리지 않으려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신부의 건강을 걱정해주시고 배려해 주시는 그분들도 사실은 허리깨나 아픈 분들도 계시니까요.
이런 마음가짐을 잃지 않기 위해서 평소에 늘 가져야겠다 싶은 스스로의 생각은 ‘우리 공동체의 과업이나 옮겨야 할 짐이 내 것인양’ 바라봐야겠다는 것입니다. 그 일, 그 짐이 ‘내 것이냐’ 혹은 ‘네 것이냐’를 구분짓는 것보다는 ‘우리가 함께 해결하거나 옮길 것’으로 보는 마음가짐 말입니다. 비록 그 짐보따리나 책상이 제가 사용할 것이 아니라도 말이죠.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루카 9,23)고 말씀하십니다. 사순시기에 우리는 예수님께서 짊어지셨고 우리도 그분을 뒤따라 짊어질 ‘십자가의 의미와 무게’를 이해하고자 노력하고 기도합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 십자가를 내 것으로 받아들이는 데에 힘겨워할 때가 있습니다. 짊어지기 싫은 고통이나 희생을 타인의 그것과 비교하는 생각에도 종종 빠집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제 십자가를 지고’서야 그분을 따르는 것이 올바른 추종(追從)의 자세라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나에게 어울리는 십자가를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려는 노력이 먼저 선행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어떤 수고나 희생, 그로 인해 뒤따르는 고생과 어려움을 자신의 바램이나 기호(嗜好), 타인과의 비교우위 등을 기준으로 하여 지나치게 선별(選別)해 내고서야 자신의 십자가로 받아들이려 한다면 이는 참된 사랑에서 우러나오는 희생이 아니라 종교적 관습으로 자신을 장식(裝飾)하는 것에 지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뒤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꾸미고 가꾸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며 기도할 때에, 이러한 마음과 유혹을 경계할 줄 알도록 더욱 노력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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