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교 신학에서 하느님 나라는 “‘이미 (시작되었지만)’ 그러나 ‘아직 (완성되지 않은)’ 존재”라고 설명합니다. 이러한 모습을 두고 예수님께서는 여러 가지 비유로 말씀하셨는데, 오늘 복음에서 듣는 누룩의 비유도 ‘아직 완성되지 않았으나 분명 우리 가운데 존재하는’ 하느님 나라에 관한 설명입니다.
이 말씀을 이해하는 것이 쉽지는 않을 수도 있습니다. 오죽하면 예수님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함께하는 제자들까지도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런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 “너희는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너희는 기억하지 못하느냐?”(마르 8,18)
신앙은 단순히 의식주를 해결하는 수단이 아닙니다. 명예나, 권력, 재물, 건강을 얻고자 하는 것도 아닙니다. 신앙은 예수님의 마음과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것입니다. 신앙은 예수님께서 몸소 하시는 일과 그 자리에 내가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오늘 독서말씀에서 야고보 사도는 그 신앙의 길이 단순하지 않을 뿐더러 때로는 힘들고 많은 유혹도 있지만, 우리를 구원의 참된 행복으로 인도한다는 사실을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 “사람은 저마다 자기 욕망에 사로잡혀 꼬임에 넘어가는 바람에 유혹을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욕망은 잉태하여 죄를 낳고, 죄가 다 자라면 죽음을 낳습니다. 시련을 견디어 내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그렇게 시험을 통과하면, 그는 하느님께서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화관을 받을 것입니다. 온갖 좋은 선물과 모든 완전한 은사는 위에서 옵니다. 빛의 아버지에게서 내려오는 것입니다.”(야고 1,14-17ㄱ)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늘 깨어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미와 아직’ 의 시간 사이에는 희망과 미래가 있을 수 있고, 근심과 걱정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먹을 것에 대한 걱정에만 마음이 머물러 있던 복음 속의 제자들(마르 8,16 참조)이 빵의 기적을 통해 드러난 하느님 나라를 이해하지 못했던 것처럼 우리도 때로는 자신과 가족, 이웃, 사회 등에 대한 근심과 걱정, 불평과 비판과 비난 등에 휩싸여 정작 그 상황 중에 예수님의 뜻과 마음으로 살아가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지 않았던가를 돌아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