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하는 말로 ‘역사는 되풀이된다’고 합니다. 한 사람도 인생을 살면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기도 하고, 다른 세대의 모습을 이해하지 못하다가도 어느샌가 그 연령대에 이르면 비로소 유사한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교회의 역사 안에서도 되풀이되는 역사가 있는데, 시대와 상황이 다를 뿐 믿음을 증거하는 유사한 모습도 존재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세례자 요한의 모습을 보면서 떠올린 한 인물이 있는데, 그는 토마스 모어 성인입니다. 중세시대의 법학자로서도 유명했던 토마스 모어는 영국의 수상이며 대법관이었습니다. 당시 국왕인 헨리 8세는 앤 뷸린이라는 여인과 재혼하기 위해 왕비와 이혼하려고 하며 토마스 모어에게 동의를 구합니다(참고로 이 시대의 법정은 교회법을 수호하는 곳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토마스 모어 성인은 ‘하느님께서 맺으신 것을 사람이 함부로 풀어서는 안된다’는 교회 혼인법의 원칙을 들어 국왕의 이혼을 강하게 반대하였습니다. 그러나 헨리 8세는 자신의 뜻대로 혼인을 강행했고, 이 일이 빌미가 되어 영국성공회가 탄생하게 됩니다.
국왕의 뜻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성인은 런던탑의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그리고 모든 지위와 재산, 심지어 가족까지도 모두 빼앗겼습니다. 종국(終局)에는 교수형을 선고받고 단두대 위에서 삶을 마칩니다. 한 신앙인이며 법조인으로서 성인은 양심과 정의를 지키는 대가로 생명을 내놓았습니다.
토마스 모어 성인은 죽음을 목전에 두고서 사랑하는 딸 마가렛에게 옥중편지를 남깁니다. 그 내용 중의 일부입니다.
“지상의 삶은 모든 사람이 사형 선고를 받고 투옥되어 사는 감옥이며, 여기에서 탈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감옥은 거대하고 다양한 죄수들이 웃고 일하고 심지어는 자신이 지낼 궁전을 짓기도 하지만 모두 하나씩 발가벗긴 채 홑이불에 감겨 묘지로 들려 나갈 수밖에 없도록 되어 있다. 권력을 가진 사람도 사형 집행인이 올 때까지만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하는 죄수일 따름이기에 자신의 지위에 자만할 수 없다. 내 사랑하는 딸아, 이 세상에서 나에게 일어날 일을 조금도 걱정하지 마라. 하느님께서 원하시지 않으면 어떤 일도 벌어질 수 없는 법이다. 내 스스로 확신하거니와 그 일이 어떤 모습으로 나에게 나타나든 눈으로 보기에 지독히 나빠 보여도 실제로는 더없이 좋은 일이 될 것이다.”
세례자 요한도, 토마스 모어 성인도 억울하게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권력의 횡포 앞에서도 자신의 신앙과 양심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보편교회는 이런 이유로 토마스 모어를 기억하고 그 삶을 본받고자 1935년에 성인품에 올립니다.
사실 우리 모두가 하느님의 정의를 쉽게 이해하지 못합니다만, ‘영원’이라는 시간 속에서 하느님의 정의는 반드시 실현될 것임을 굳게 믿고 이를 따르고자 노력하기는 포기하지 않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