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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강론

  저는 집에서 혼자 살죠. 중국에서 혼자 살아온 시간도 적지 않다 보니 밥도 혼자 곧잘 지어 먹고, 청소나 빨래도 아쉬운대로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한 가지 단점이 있는데, 때로는 설거지거리를 쌓아둘 데도 있습니다.

  제가 가끔 일상생활 이야기를 하면서 저 자신을 두고 ‘제가 굉장히 게으른 사람입니다’ 하고 말씀을 드려도, 제가 지금껏 가식적인 모습을 보여드려서인지 아니면 교우분들이 예의상 아닌 것 같다고 하시는지는 몰라도, 잘 믿지 않는 듯한 반응을 경험합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저희 집 부엌을 전체적으로 정리할 일이 있어서 수녀님들께 도움을 받게 되었습니다. 사실 제가 정리정돈을 잘 못하기는 하거든요. 당시에 찻잔 몇 개와 작은 접시 몇 개가 설거지가 되지 않은 채 남겨져 있었는데, 한 분이 물어보시더라구요 : “왜 설거지를 안 해요?”

 

  이렇듯 타인에게 보이지 않는 광경이기 때문에 어떤 일들은 설거지를 미루듯 미루어두기도 합니다. 때로는 정말 바빠서 그럴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만큼 여유가 있을 때에도 게으름을 피울 때도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 합리화를 하죠 : ‘모아서 해결하면 훨씬 효율적일 수 있다’라고요.

  그러다가 계획에 없던 상황이 생기거나 하여 여유를 부리다가 바빠지면 이것이 되레 부담이나 숙제처럼 돌아옵니다. 더욱 정리하기 싫어질 수도 있죠. 그래서 호되게 고생을 하고 나면 다음부터는 제깍제깍 정리하자고 마음을 먹습니다. 이렇듯 해야 할 것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마음을 먹었을 때 처리하는 것이 핑계로 삼았던 목적인 ‘효율성’을 높여줍니다.

 

  어쩌면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일도 이와 같지 않을까 합니다. 다른 일, 세상이 요구하는 일들을 모두 다 한 뒤에야 주님의 일을 하겠다는 사람들을 종종 봅니다. 지금은 사업관계로나 교우관계에 집중하느라 여유가 없다면서 나이가 좀 더 들면 성당에 가겠다고 말씀하시는 쉬는 교우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생각해 봅니다. 지금 미루어두는 일이 과연 나이가 들고 나면 미루지 않을 수 있을까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에 파견하십니다. 그런데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말라고 명령하십니다. 왜 이런 명령을 내리셨을까 생각해보면, 소유하는 것처럼 다른 것에 의지하지 않을 때 주님께서 파견하신 그 목적을 미루지 않고 지금 당장 실천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주님의 뜻을 방해하는 것들을 품고 간직하려고 해서는 파견받은 사명을 이룰 수 없다는 뜻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여정은 좀 더 불편하거나 불안정할 수 있지만 온전히 주님의 뜻을 기억하고 실천할 수 있기 위해서는 필요한 선택이며 결단입니다.

 

  혹시나 이런 불편함이나 불안정함으로 인해 망설여질 때에 우리가 그 말씀을 실행하도록 용기를 주는 말씀을 오늘 독서에서 듣습니다. 이 말씀을 잘 새겨봅시다.

 

  “주 네 하느님의 명령을 지켜 그분의 길을 걸으며, 또 모세 법에 기록된 대로 하느님의 규정과 계명, 법규와 증언을 지켜라. 그러면 네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성공할 것이다.”(1열왕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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