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주님께서 부모님의 손을 빌어 자신을 성전에 봉헌하신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자녀를 낳은 어머니가 부정함을 벗는 정결례를 행하면서 동시에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자녀를 주님께 봉헌해야 하는 규정에 따른 것입니다.
전통적으로 교회는 이 축일에 두 가지 큰 전통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전례와 기도에 사용하는 초를 축복하는 것입니다. 사실 적잖은 교우들이 미처 알지 못하는 내용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 '초의 축복'에 관한 관습인데요. 기도할 때에 사용하는 다른 성물들은 사용하는 이가 필요로 할 때마다 수시로 축복을 합니다만, 초는 바로 이 날에만 축복합니다. 초를 필요로 한다 할 때에도 이 날 축복받은 초를 준비해 두었다가 한 해 동안 사용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초가 발산하는 '빛'이 바로 그리스도를 상징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두번째는 자신의 삶을 하느님 나라를 위해 온전히 봉헌하는 남,녀 수도자들의 수도서원식을 이 날 거행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오늘을 '축성생활의 날'이라고 하죠. '축성'(라틴어 consecrata)는 '하느님처럼 거룩해진다'는 뜻입니다. 성경에서 '성별(聖別)'(거룩한 자로 따로 뽑아세움)이라고 쓰이는 단어이기도 하고, 하느님과 같은 거룩함을 가장 큰 목표로 지향하는 삶을 뜻하기도 합니다. 이전에는 이 'consecrata'라는 단어를 '봉헌'으로 번역하기도 했습니다만, 수도자들이 그런 특별한 삶을 선택하는 것이 '거룩함' 혹은 '완덕(完德)'을 추구하는 삶임을 이해해야 합니다. 또한 수도자가 본당공동체와 같은 환경에서 살아갈 때에 본질적으로 추구하는 거룩함을 훼방할 수 있는 어떤 어려움이나 유혹을 만들지 않도록 우리도 노력함으로써 이런 축성생활을 존중해 줄 수 있습니다.
아울러 오늘 우리는 성전에서 하느님께 봉헌되신 예수님을 통해 참된 봉헌의 의미를 되새깁니다. 성전에서 봉헌되는 것은 양이나 염소, 비둘기가 아니라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자기 자신입니다. 자신의 더 많은 것을, 더 나아가 자신을 온전히 하느님께 봉헌하거나 하느님의 뜻에 맞게끔 쓰이도록 내어놓고자 하는 노력은 우리 모든 신앙인에게 필요한 자세입니다.
하느님의 거룩하심을 닮고자 노력하기 위해 필요한 자신의 것을 봉헌하는 정신으로 살아가는 수도자들과 모든 교우들을 위해 또 한 번 기도하는 날을 보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