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나 전례 때에 제대에는 초를 밝힙니다. 초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제대 위의 초는 ‘우리가 죄악의 어둠에서 허덕일 때, 구원의 길로 나아가도록 우리의 앞길을 밝히 비추어주시는 빛, 곧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각 가정에서 기도할 때에 촛불을 밝히는 것도 같은 의미를 기억하기 위한 방법입니다. 그래서 ‘빛’을 의미하는 초 혹은 어떤 조명은 그리스도교 건축이 성(聖)미술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소재이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등불의 비유에서 빛을 밝히는 도구인 ‘등불’은 복음의 선포를 뜻합니다. 등불의 본질은 스스로 빛을 내어 주변을 밝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등불은 복음자체인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로 숨기지 못하고 선포해야 할 복음 곧 기쁜 소식 그 자체라는 말이 됩니다. 구약시대의 유대교 전통에 근거한 성경의 기록을 보면 등불은 엘리야와 모세(묵시 11,4) 혹은 세례자 요한(요한 5,35)을 상징하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런 등불보다 훨씬 더 밝고 강한 빛이시며, 그래서 ‘등불’이었던 세례자 요한은 스스로를 가리켜 이 빛을 증언하러 왔을 뿐(요한 1,4-9)이라고 말합니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우리의 진실된 속내는 감출 수 없습니다. 애써 감추려 해도 사랑이 넘치면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질 것이고, 기쁨이 넘치면 미소가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근심이 깊으면 얼굴에 수심이 드러날 것이고, 분노에 차 있으면 얼굴이 굳어 있거나 일그러져 있듯이 말입니다.
등불이 그 빛을 드러낼 수 밖에 없듯이, 우리 마음속에 담고 있는 감정도 완전히 감출 수만은 없듯이, 그렇게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믿음(혹은 확신)도 숨길 수 없는 것입니다. 아니, 우리의 믿음은 숨길 수 없는 것이어야 합니다.
비록 타인의 생각과 신념, 종교심, 가치관 등을 존중해야 마땅하지만 그럼에도 나의 믿음이 숨길 수 없을 만큼 배어나오지 못한다면 여전히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 믿음의 등불을 제대로 밝히지 못한 것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생각해 봅니다. 제대에 초를 밝히거나, 기도할 때에 초를 밝히면서 정작 내 마음속 믿음의 등불을 밝히지 못하고 있다면 그 등불을 먼저 깨끗이 닦고 기름을 칠해 두어 필요한 때에 환히 밝히는 것이 먼저라는 사실을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