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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강론

  예수님의 공생활을 묵상하며 보내는 연중시기의 첫 주일인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첫 기적인 '카나의 혼인잔치' 이야기입니다. 복음서는 예수님께서 당신의 권능으로 행하신 놀라운 일에 관하여 '기적'(奇蹟,) '이적'(異蹟), '표징'(表徵) 등의 다양한 표현을 사용합니다. 이 가운데서도 오늘 복음의 끝자락에서는 예수님의 첫 기적을 '표징'(2,11)이라고 기록합니다. 즉 '표징'이란 말은 숨겨진 어떤 섭리나 뜻, 힘, 존재 등을 드러냄으로써 알아볼 수 있는 도구, 상징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면 이 첫 기적이 드러내고 싶은 속내, 참뜻은 무엇일까요? 많은 교우들이 아시다시피 예수님의 공생활에서 핵심키워드는 '하느님 나라'입니다. 하느님 나라가 무엇이며 실제로 어떻게 존재하는지, 그리고 하느님 나라를 차지하려면 어떻게 해야할지 등을 가르치고 '표징을 통해 보여주며' 믿도록 이끌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느님 아버지와 예수님께서 하나이듯'(요한 17장 참조) 우리도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답게 살도록 촉구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첫 기적의 이야기의 배경이 '혼인잔치'라는 것은 남다른 의미를 가집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서로 맞아들이는 자리, 그 합의에 축복을 빌며 함께 기뻐하는 친교의 자리가 혼인잔치이기 때문입니다. 하객(賀客)들이 신랑,신부를 그렇게 대하듯 축복의 물결이 넘실거립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예수님께서는 그 사랑과 축복의 나눔이 깨트려지지 않도록 도움을 주셨습니다. 이것이 첫 기적이며, 곧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하느님의 축복이 함께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그리고 누가 먼저 청하지도 않았음에도 예수님께서 스스로 결행하신 모습을 통해 이 축복이 '하느님 아버지께서 원하신 섭리'임을 알려줍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이루신 십자가와 파스카의 신비 또한 그러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사람과 세상을 사랑하시듯 그렇게 끝까지 하느님의 뜻을 좇아 사람과 세상을 사랑하신 예수님께 주어진 부활의 영광이 하느님 나라를 드러냅니다. 오늘 복음의 자리에서 드러난 이 축복, 이 기적은 과연 하느님 나라를 드러내는 "표징"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예수님처럼 진심으로 서로를 사랑하고자 노력한다면 하느님의 축복은 응당 주어지기 마련이고, 그곳이 바로 하느님 나라입니다. 우리 모두는 그 하느님 나라를 추구하고 희망하며 살아가는 사람임에도 가장 중요한 일은 바로 최선을 다해 사랑하는 일이라는 단순한 지리를 지키는 데에 애를 먹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사랑하기를 포기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웃을 더 사랑하기 위해 용서하기를 포기하지 않고,

하느님을 더욱 깊이 사랑할 수 있기 위해 기도하기를 게을리하지 않으려 노력하기를 포기하지 않고,

하느님의 뜻을 좇아 살아가면 하느님의 사랑이 언제나 나와 함께 하리라는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그렇게 살아가야 합니다.

그 끝이 허망할까봐 노심초사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 확신을 가지도록 예수님께서 오늘 복음의 '표징'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계십니다. 

 

  사랑하기를 포기하지 않으려는 끈질긴 모습을 통해,

부부 사이에, 부모와 자녀 사이에, 우리 공동체의 교우들 사이에, 지척간에 살아가는 이웃을 사이에서 

우리의 사랑은 얼마나 살아있는지를 늘 먼저 성찰하고 확인하면서 동시에 하느님의 축복을 청할 줄 아는 신앙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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