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을 지내고 첫 주일, 교회는 성가정 축일을 지냅니다. 가정의 위기, 가정의 붕괴라는 말은 너무 자주 들어서, 너무 많이 들어서 무덤덤하기까지 합니다.
“엄마가 있어서 좋다, 나를 이뻐해 주어서. 냉장고가 있어서 좋다, 나에게 먹을 것을 주어서. 강아지가 있어서 좋다, 나랑 놀아 주어서. 아빠는 왜 있는지 모르겠다.”
초등학교 2학년 학생이 쓴 시입니다. 울 수도 웃을 수도 없는,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그런데 아이가 자기가 느낀 대로 쓴 시니 어쩔 수 없습니다. 시는 우리 가정의 현실을 너무나 적나라하게 묘사해 놓았습니다. 이런 에피소드도 있습니다. 다섯 살, 네 살 된 연년생의 두 아들을 둔 아버지가 어느 날 퇴근하고 집에 들어갔더니, 거실에서 놀던 다섯 살 큰아들이 동생에게, “야~, 너희 아빠 왔다.”라고 하더랍니다. 보통 아버지가 퇴근해서 들어오면 ‘아빠다!’하고 인사해야 하는데... 뒤통수를 세게 한 방 얻어맞은 셈입니다. 장남이라고 좀 책임감도 강하게 키우겠다고 차별했다가, 그게 큰아들에게 상처가 되었고, 더 큰 기대를 했던 큰아들에게 ‘너희 아빠 왔다.’라는 소리만 들은 겁니다.
가정! 특별히 성가정은 그냥 되는 게 아닙니다. 하느님을 중심으로 아버지, 어머니, 자녀가 사랑으로 하나 되어야 성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성가정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부부가 서로 존중하고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최인호라는 소설가가 있습니다. 아주 열심한 교우였습니다. 부모님이 독실한 불교 신자여서 불교 영향을 많이 받고 자랐는데, 세례를 받고 열심한 신자가 되었습니다. 과거 어느 잡지에 이런 글을 썼습니다.
“밖에서 존경을 받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가족으로부터 존경을 받는 사람은 드물다. 밖에서 인정을 받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자기 아내로부터 인정을 받는 남편은 드물다. 서로 모르는 타인끼리 만나서 아이를 낳고, 그 아이들과 더불어 한 점의 거짓도 없이 서로 존중하면서, 손과 발이 닳도록 일해서 먹고 살면서 서로 사랑하며 살다가 감사하는 생활 속에서 생을 마감할 수 있는 가족이라면 그들은 이미 가족이 아니라 성인이다. 그렇게 보면 우리가 살고 있는 가정이야말로 하나의 엄격한 수도원인 셈이다. 그 가정에서 살고 있는 가족들은 이미 종신서원을 약속한 수도자들인 것이다. 가족이라는 수도원에서 우리는 일상을 공유하며 사랑을 수양하고 있다.”
모든 가정이 성가정이 될 수 있도록, 서로 존중하고 올 한해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면 내년에는 좀 더 충실할 것을 다짐하면서 주님의 축복을 청해야 하겠습니다.
비산본당 주임 | 허인 베네딕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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