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력으로 한 해 동안 기념하는 축제일이 많습니다만 그 가운데에서도 성모님에 관련된 축일이 많습니다. 그런데 성모님과 관련된 모든 신심이나 축일, 혹은 기적이나 다른 어떤 신비도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가 없이는 아무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실제로 많은 성모신심이나 이를 기념하는 축일이 예수님의 사건을 기념하는 축일과 잇닿아 있기도 합니다.
그 가운데서도 오늘은 '성모님께서 당신 어머니(안나)의 태중에 잉태되신 순간부터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원죄에 물듦이 없으셨다'는 교리, 곧 성모님의 무염시태(無染始胎) 교리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고백하고 확인하는 날입니다. 하느님이시며 죄에 물듦이 없는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서 우리와 똑같은 인간으로 태어나시기 위해서 마련된 가장 깨끗한 자리가 바로 성모님의 복중(服中)이었습니다. 그만큼 깨끗한 자리였기에, 인간이라면 누구나 원죄를 지니고 태어날 수밖에 없는 인간적인 본성에서도 성모님은 예외가 되셨으리라 믿고, 그렇게 되기 위한 특별한 은총을 하느님께서 성모님께 베푸셨다는 믿음을 기억하는 것이 바로 오늘의 축일을 지내는 이유인 것입니다.
성모님께서 우리에게 신앙인의 고귀한 모범이 되시고 구세주 그리스도께 우리의 간청을 전구해 주시는 분이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굳은 믿음을 표현하려다 보니 때로는 예수님께 졸라대면 아들이 어머니의 청을 뿌리칠 수가 없다는 둥 하는 식으로 왜곡된 성모신심을 이야기하거나 설명하는 모습에서 때로는 실망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성모님은 어디까지나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있도록 하시기 위해 필요한 도구였으며 그 도구의 역할에 충실했던 분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그러하듯,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천사의 말을 들으면서도 그것이 하느님의 뜻인지 아닌지를 먼저 생각하고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성모님의 자세가 바로 그 밑바탕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축일을 지내며 하느님께서는 주 예수님을 통하여 이루실 인류구원의 성실한 협조자에게 그 협조하는 데에 필요한 탁월한 은총 또한 베풀어주신다는 사실을 잘 새겨들었으면 합니다. 또한 하느님의 일을 할 때에는 우리가 모든 결과를 얻고 열매를 거두려는 성급한 태도가 아니라, 때로는 이해할 수 없고 수긍하기 힘들더라도 내가 뿌린 씨를 하느님께서 거두실 것을 의심치 않는 자세, 노력은 내가 할지라도 영광은 하느님께서 받으실 수 있도록 자신의 처지를 낮추는 겸손의 자세를 성모님에게서 배울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