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에 나오는 헤로데의 이야기는 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하며 하신 놀라운 일들에 더하여 심지어 제자들까지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느님 나라의 징표를 보임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는 가운데 일어난 일을 전하고 있습니다.
헤로데가 예수님의 일을 듣고서 보인 반응은 ‘당황하였다’(루카 9,7)고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에 관하여 사람들은 다양한 견해를 보였는데, 헤로데는 이 가운데에서 ‘죽었던 세례자 요한이 되살아났다’(9,8)는 소문에만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그가 지은 죄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이렇듯 당황하거나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 그분이 하신 일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 이유는 헤로데가 여전히 자신의 죄과(罪過)에서 자유롭지 못한 사람임을 드러내줍니다.
우리도 어떤 이유로 마음이 조급해지거나 두려운 것이 있을 때, 시야도 좁아지고 다른 것을 둘러볼 여유를 잃기 쉽습니다. 악한 이유에서만 이런 상황이 생겨나는 것은 아니겠지만, 때로는 과거의 상처나 자신의 잘못, 욕심이나 집착, 편견 등으로 인해 이런 잘못을 범하기도 하죠.
예수님의 복음을 듣거나 은총을 받아 기뻐했던 사람들과는 달리 헤로데가 두려움에 더욱 사로잡히게 되었던 것처럼, 우리도 교회를 통하여 신앙인의 삶의 방향을 밝히 제시하시는 하느님의 계명이나 공동체의 제의(提議)를 마주할 때 걱정과 부담에 갇혀버린다면 신앙은 우리의 마음과 시야를 열어주고 더욱 자유롭게 선행을 실천하도록 이끌어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마음과 시야를 닫히게 하고 가두어버리는 것처럼 여겨질 것이 아닙니까?
두렵거나 부담으로 인해 위축되지 않으려면 용기도 있어야 하고 별도의 노력이 필요할 수도 있겠으나, 적어도 그 두려움이나 부담에 짓눌린 마음가짐과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그 이유가 나의 영적 상태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닌지도 돌아볼 수 있음을 오늘 복음말씀 속의 헤로데의 모습을 통해 생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