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신자들은 선행을 실천하며 남들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에 사로잡힐 때가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만, 현대사회는 각종 학위나 연수, 자격증, 입상경력 등을 통해 자기자신을 스스로가 증명해보이지 않으면 경력이나 자격을 인정받는다거나 그에 맞는 대우를 받기 힘들 때도 많은 지라, 스스로가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는 것을 넘어 자랑하는 것을 때로는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사회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이웃을 사랑한다거나 누군가를 돕는 것에서도 ‘내가 이만큼 사랑하고, 그를 돕고 있다’라고 드러내지 않으면 가치없는 것인가 헷갈릴 때도 있을 수 있습니다. 칭찬받거나 인정받고 싶은 욕심을 가진 것은 아닌 듯 한데, 정작 쬐끔만 알아줬으면 싶은 상대방이 알아주지 않아서 서운할 때도 있고, 때로는 그 자그마한 서운함으로 인해 지금껏 행해오던 사랑실천을 멈추기까지 하는 사람도 있으니 말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병을 앓고 있는 시몬의 장모를 만나십니다. 그를 병고에서 해방시켜주는 선행을 하시면서, 기적을 보이시면서 사람들에게 드러나게 하실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한편 예수님을 힘입어 자리를 털고 일어난 시몬의 장모도 그 사실을 누구에게 알리거나 호들갑을 떨지 않고 드러나지 않는 봉사, 조용한 봉사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과 시몬의 장모는 도대체 무슨 마음으로 이렇게 둘만의 조용한 시간, 기적을 체험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했을까요?
두 사람의 태도에서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지 하느님만은 다 보고 계시며, 모든 것을 아신다’는 믿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사랑한다면, 누군가가 알아주기를 바라지 않아도, 상대방을 사랑해줄 수 있다는 그 자체가 나에게 기쁨이 됩니다. 더구나 우리는 하느님만은 나의 속마음을 환하게 궤뚫어보신다는 사실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러기에 굳이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것을 의식하기 이전에 나의 선행과 애덕실천이 하느님께 드리는 공로가 된다는 사실에 기쁨을 얻습니다.
드러내지 않고도 조용히 봉사하고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이미 그 사랑실천으로 사는 모습이 변하고 있습니다. 특정한 말이나 행동으로 굳이 드러내려 하지 않아도, 그 사람이 사는 모습에서 그 사랑이 묻어납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아시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능력으로 변화시켜 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것으로 인해 기쁘게 살고 싶다면, 이유없이 그저 먼저 사랑하는 길 밖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