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흔히 혼용하는 단어 가운데 '정리'와 '정돈'이 있습니다. 이 두 단어는 비슷한 용도로 쓰이는 듯 하지만 그 의미는 확연히 구분됩니다. '정리(整理)'는 문제가 되거나 불필요한 것을 "줄이거나 없애서" 말끔하게 바로잡는다는 의미입니다. 한편 '정돈(停頓)'은 어지럽게 흩어진 것을 규모 있게 고쳐 놓거나 "가지런히 바로잡아" 놓는다는 뜻입니다. 즉 정리는 버리는 것, 정돈은 다시 배열을 갖추어 놓는 것에 그 뉘앙스가 있습니다.
흔히 '정리정돈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어지럽게 느껴지는 환경을 잘 정비하기 위해서는 때로는 정돈만 해서는 부족할 때가 있습니다. 앞으로의 삶 속에서 생겨나는 새로운 것을 채울 수 있을 만큼 여유가 있고, 그만큼 넉넉한 공간을 확보하면서 동시에 가지런한 모습을 갖추려면 ‘정리하는 것’, 곧 '버리는 행위'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사실 담아두지 못할만큼 많은 것을 쌓아두면 정돈을 하고자 해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제자리를 찾도록 바로잡아야 할 것들을 위해 정리 즉 '버릴 것을 골라내는 것'이 필요합니다.
오늘 요한복음의 이야기에서도 이러한 '버림의 행위'가 존재합니다. 한 아이가 가지고 있었던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내어놓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정리해내는 것들이 불필요한 것만이 아니듯, 이 한 아이는 자신에게 꼭 필요하기에 버리기 어렵다고 할 만한 것임에도 그 음식을 내놓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버림의 행위'가 있었기에 비워진 그 자리를 채울 수 있었던 것이 바로 예수님의 손을 통해 이루어진 사랑의 기적입니다.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내어놓고 내 손에서 버림을 통해 나의 손 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의 손에도 하느님의 사랑과 구원이 가득차게 되었습니다.
북경에서도 이런저런 이유로 이사를 자주 다니시는 경험을 목격합니다. 이사를 다닐 때마다 물건을 버리지 못하면 좀더 넉넉한 크기의 새집에 들어가도 집이 좁아보입니다. 집은 넓혔을지라도,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마음도 더 넉넉해지지는 못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공간을 놓고 보아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합니다. 사람에 대한 미움과 상처를 그저 추스르고자 할 것이 아니라, 때로는 완전히 잊고 털어서 그 기억마저 ‘버려야’ 합니다. 이런 '비워내는 행위'가 없이는 타인의 긍정적인 면과 고마운 점을 받아들이기 힘들 것입니다. 그렇게 하려 애를 써봐도 고이고이 잘 간직하기가 힘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원수들을 하느님 사랑 안에 받아들이기 위하여 한가지를 버리셨는데, 그것은 바로 자신의 생명곧 당신 자신이었습니다. 사실 이로써 예수님이 잃지 않고 지켜내신 것은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당신 - 선한 이나 악한 이나 그 모든 이를 향해 보이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얻기 위해 악인들마저도 하느님의 사랑에로 이끌고자 노력하다 때로는 갈등을 빚기도 했던 - 자신을 버리시고,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과 자비 안에서 당신 자신을 새롭게 정돈하셨습니다 : “아버지, 제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
우리도 꼭 필요할 것 같은 미련, 혹시나 필요하거나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 등으로 인해 버리기를 아까워하여 손에 꼭 쥐고 있는 무엇으로 인하여 새로운 시각, 새로운 마음가짐, 새로운 관계와 경험을 채우지 못하는 것은 없습니까? 우리 마음과 생각 속에 ‘정리할 것, 버려야 할 것'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욕심과 미련과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나를 붙들어매는 두려움을 버려야 하고, 이웃을 형제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옹졸한 고집이나 자존심을 버려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그저 포기하는 것도, 싸움에서 지는 것도 아닙니다. 더 큰 것 곧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내 것을 하느님 앞에 내어놓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버림'과 '비움'은 하느님께 드리는 우리의 '봉헌' 행위와 상통할 수 있습니다. 오늘도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내어주시는 성체성사 안의 예수님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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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
여러가지 주변 환경을 고려하여 다음에 돌아오는 두 번의 주일(8/1, 8/8)에는 주일미사가 없습니다.
아울러 8/15(성모승천대축일)에는 미사를 봉헌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제 개인적인 필요에 의해 이 3주간의 기간에는 평일 강론을 따로 게재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주일 강론은 올려두도록 하겠습니다.
이 점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