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신부가 되고 나서 지키는 습관 가운데 하나가 묵주반지를 쓰지 않는 것입니다. 이유는 세 가지가 있는데요. 첫째는 서구의 관습에 따르면 반지는 영주(領主)의 인장(印章)이었고, 오늘날에도 주교의 상징 가운데 하나가 반지입니다. 그래서 이에 대한 존중 혹은 주교와의 구분을 위해 반지를 착용하지 않는 관습을 따르고자 합니다. 둘째는 신부가 특히 미사를 봉헌할 때에 몸에 눈길을 끌 수 있는 장신구를 착용하는 것이 어떤 이들에게 분심(分心)을 일으킬 수 있을까 우려하는 이유입니다. 마찬가지 이유로 적어도 미사를 봉헌할 때에는 가급적 시계를 착용하지 않거나 화려한 시계를 기피합니다. 셋째는 묵주반지는 기도하는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전의 경험에 비추어 돌아볼 때, 저는 묵주반지를 기도할 때에 사용하는 빈도가 생각보다 많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차라리 묵주를 지니고 다니는 것이 더 좋겠다는 생각이 있어서입니다.
물론 교우들이 묵주반지를 사용하시는 것을 저는 결코 싫어하지 않습니다.
묵주반지도 기도할 때에 쓰는 도구이기에 장만하게 되면 사제에게 성물축복을 받습니다. 이러한 성물의 축복은 ‘그 도구를 통해 기억하는 신심을 기도로써 바치면 그 은총을 교회가 보증한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모든 성물은 기도하는 데에 쓰이는 것이며, 기도하지 않는다면 별 의미가 없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저는 성물을 축복해 달라고 청하는 분께 ‘기도 많이 하세요’라고 말씀드리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중요한 것은 기도의 힘과 은총을 믿고, 그 기도를 바치는 사람이 되는 것이 묵주반지를 착용하는 것보다 우선시되어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형제, 자매의 관계조차도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가’(마태 12,50) 하는 기준으로 그 의미가 가치를 판단하셨습니다. 성당에 가끔만 나오거나 신자가 될 기회를 미루는 분들 가운데 배우자만 열심히 신앙생활을 이어가시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에 특히 어떤 형제님들은 ‘아내가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고 있으니 치맛자락만 붙잡고 있으면 좀 낫지 않겠습니까’ 하는 식으로 말씀하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타인이 하느님과 맺은 신앙의 관계는 나와 하느님의 관계가 아님은 분명합니다. 자선이나 선행은 때로 동참할 수도 있겠으나, 나 스스로 하느님의 뜻을 실행할 기회를 날려버리고 있음은 여전히 아쉬운 것입니다.
앞서 묵주반지 이야기를 했듯, 가톨릭교회에는 우리 신앙의 의미를 담고 있는 상징적 행위와 관습이 많습니다. 겉모양이나 형식을 배우거나 익히며, 그 뜻을 헤아리고 실천함으로써, 우리 삶의 습관들을 조금씩조금씩 바꾸어나가는 것이 훨씬 중요함을 기억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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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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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