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지금껏 그리 길지 않은 사제생활을 하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중국에서 보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동료 신부님들에 비해서 경험의 횟수가 적은 것도 몇 가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신부가 된 이후로 사제서품식에 참례해 본 일이 거의 없습니다. 북경으로 오기 직전인 2019년 말에는 13년여 만에 서품식에 참례했었는데요.
새 사제들의 서품을 앞두고 교구장님께서 하시는 강론은 새로 사제품을 받을 이들에게 주시는 일종의 훈시와 사제직의 고귀함에 대한 가르침이 주된 내용입니다.
올해 선종하신 고(故) 이문희 바오로 대주교님께서 사제로 서품될 이들을 두고 하셨던 강론말씀을 메모해 둔 것이 생각나 찾아보았습니다 : 사제의 직분을 맡는다는 것은 어떤 자격증을 따는 것이 아니라, 사제의 품위를 간직하게끔 그 사람의 신분이 바뀌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사제가 되는 것입니다. 적어도 사제의 직분을 수행하는 동안만큼은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렇게 사제가 탄생하는 것을 기뻐하고 하느님께 감사드리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사제직이 그렇게 고귀한데, 그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참 보잘것 없습니다. 저또한 그러하거니와, 인물이 잘난것도, 인품이 출중한 것도, 능력이 뛰어나거나 머리가 비상한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그 중요하고 고귀한 사제직을 맡기려는 사람들이 보잘것 없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안에 하느님의 신비가 있습니다.
오늘 축일을 지내는 베드로와 바오로, 두 사도의 모습을 생각해보며 위의 말씀을 떠올리게 됩니다. 유다인들로부터 시작된 교회의 상징인 베드로는 교회의 으뜸이 되었고,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한 바오로는 교회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어부였던 베드로의 단순, 무식, 과격함이나 바오로가 늦깎이로 사도가 된 점 등은 그들에게는 약점이지만, 그러한 약점이 있기에 그들을 통해서 놀라운 일을 이루시는 분이 바로 하느님 아버지시라는 사실이 더욱 밝히 드러나게 됩니다.
사람들을 통해 보다 크고 위대한 일을 보이시기에 합당한 도구가 되는 것은 인간적인 눈으로만 판단할 수는 없는 일임을 새삼 깨닫습니다. 그러기에 나의 부족함과 약점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서 하느님의 섭리를 받아들이려 노력할 때에, 우리는 하느님의 크신 사랑을 드러내는 참된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사도들을 공경하는 오늘, 그들에게 베풀어주신 하느님의 은총이 우리에게도 필요함을 기억하며 그 은총을 기도로써 청할 줄 알아야겠습니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누르지 못할 것이다."(마태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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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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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토록 크신 두분이 너무나 인간적이셨기에
저희에게 더욱 위로와 희망이 되어주시는 듯 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