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 곧 사도(使徒)라고 불리는 이들은 열 두 명이 아니라 훨씬 더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서도 중추 역할을 할 대표 집단으로서 ‘열 두 제자’의 상징성 또한 중요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구원받을 모든 이들을 의미하는 ‘열 두 지파’를 상징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승천을 목격한 직후, 예수님을 배신한 유다를 대신하여 새로운 사도를 충원(充員)하고자 하는데 그 조건을 두고 오늘 독서의 사도행전 말씀은 이렇게 전합니다 : “주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지내시는 동안 줄곧 우리와 동행한 이들 가운데에서…… 한 사람이 우리와 함께 예수님 부활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사도 1,21-22)
직무나 특정 역할을 부여받았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줄곧 예수님과 함께한 사람인가’ 하는 사실이었고, 이 조건이 가장 중요한 이유는 사도들은 ‘예수님 부활의 증인’이라는 자의식(自意識) 때문이었습니다.
줄곧 예수님과 함께, 하느님의 자녀로서나 우리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살아온 많은 교우들이 계실 텐데, 예수님의 부활로 우리 모두가 구원을 약속받았음을 전할 수 있기 위해, 새로운 인물에게도 같은 권위를 부여하고 존중할 수 있는 개방성도 필요하고 부활의 증인으로서 내가 하느님과 교회에 필요하다면 그 초대와 제안을 수용하는 모습도 마찬가지로 필요하겠지요.
오늘 기념하는 성 마티아 사도 또한 다른 열 한 사도들과 마찬가지로 세상 끝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는 과업에 있어 똑같은 몫을 수행했습니다. 죽음에 관하여서는 확실한 기록이나 전승이 없지만, 에티오피아에서 전교하신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에게 부여된 사도로서의 책임감과 상징성, 그리고 그 무게를 받아들이고 수행해 냄으로써 증거한 신앙.
이 모든 것이 지금 우리 각자에게도, 공동체 전체를 놓고 볼 때에도 절실히 필요합니다. 마티아 사도와 같이 부활의 증인으로서 필요한 몫을 감당할 재목, 그 재목을 품을 수 있는 공동체가 되기 위하여 필요한 은총, 이 모두를 성령강림대축일을 앞둔 9일기도의 시간 중에 청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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