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는 ‘사소한 차이에 집착하여 갑질하는 사회’처럼 보입니다. 갑과 을은 계약을 맺을 때 사용되는 법률적인 용어입니다만, 부탁받은 사람과 부탁하는 사람의 관계를 지칭하기도 합니다. 회사가 노동자들에게 갑질한다고,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갑질한다고, 손님이 상인에게 갑질한다고 규탄하지요. 그런데 갑은 을에게 갑질하고, 을은 병에게 을질하고, 병은 무에게 병질합니다. 사소한 차이에 집착하여 갑질하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이 사회에서 그리스도인은 ‘보다 큰 자가 보다 작은 자에게 머리 숙이는 것을 영광으로 아는 사람’입니다. 거만한 모습으로 사랑할 수는 없지요.
삶이 온통 모순덩어리로 여겨질 때, 사랑을 실천하는 데 있어서 한계에 부딪힐 때,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할 때 ‘불기둥’을 떠올렸으면 합니다. 이집트를 탈출한 히브리인들이 길을 잃고 헤맬 때, 칠흑 같은 어둠을 밝히며 그들을 자유의 길로 이끌었던 것은 ‘불기둥’이었습니다. 오늘날에는 6주간 제대 곁을 지키고 있는 부활초가 바로 그 불기둥이지요. 부활초는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부활초는 우리 앞에 딱 버티고 서서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할지 그 방향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자신의 키를 낮추며 어둠을 밝히는 부활초처럼 우리도 자신을 낮추면서 세상을 밝히는, 우리의 시선을 낮추어 작은 것에 감사할 줄 아는, 작은 것 안에 깃든 ‘하느님의 선물’을 발견할 줄 아는 예수님의 친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을 실천하면 너희는 나의 친구가 된다.” (요한 15,13-14)
효성초등학교 교장 | 박비오 비오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