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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강론

  복음 속 이야기의 인물들 가운데에서도 막달라 여자 마리아는 특별히 예수님을 사랑하는 여인 가운데 하나로 소개됩니다. 그래서 그녀는 예수님의 무덤을 다시 찾았고, 빈 무덤을 가장 먼저 발견합니다. 그 사실을 확인한 제자들이 돌아간 후에도, 마리아는 슬픔과 상실감에 잠긴 채 무덤 앞에 서서 울고 있었다(요한 20,11)고 복음은 전합니다. 이 슬픔과 상실감, 그로 인한 눈물은 사랑하는 이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시 살아나셨고, 마리아의 앞에 다시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을 알아봄으로써 앞에서 언급한 슬픔에서 방금 벗어난 마리아에게 말씀하십니다 : “내가 아직 아버지께 올라가지 않았으니 나를 더 이상 붙들지 마라. 내 형제들에게 가서, ‘나는 내 아버지시며 너희의 아버지신 분, 내 하느님이시며 너희의 하느님이신 분께 올라간다.’ 하고 전하여라.”(요한 20,17)

  이 말씀에서 등장하는 두 가지의 동사, 곧 ‘붙들다’와 ‘전하다’는 행위는 모두 예수님을 사랑하는 이의 방식으로 비춰집니다. 사랑하기에 떠나보내고 싶지 않고 ‘붙들고’ 싶습니다만 그러하지 못해서 슬픔과 상실감에 잠깁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는 이에게 ‘당신에 관한 새로운 소식을 전하라’고 명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살아나셨으며 그분께서 죽기 전에 예고하셨던 말씀이 참되다’는 것을 전하는 것 곧 예수님께서 죽기 이전에 하셨던 일을 이어받는 ‘제자로서의 사랑’을 원하심을 알 수 있습니다.

 

  슬픔이나 상실감, 눈물이 때로는 공허함으로부터 헤어나올 수 있도록 도와줄 수는 있지만 그렇게 빠져있음으로 인해 무기력해지거나 ‘복음을 전하라고 하신 사랑하는 이의 간곡한 부탁’을 외면하기보다는 그 부탁을 기억해내고 실행할 수 있는 사람, 이는 곧 예수님을 사랑하기에 ‘부활이라는 사건을 통해 천국에서의 영원한 생명이라는 지평을 같이 바라볼 수 있는’ 이들이 자신의 사랑을 드러내는 모습입니다.

  또한 우리가 부활의 증인으로서 지녀야 될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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