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공동체에서도 수년 전에 일본 규슈 지역을 순례하고 오신 분들이 계시다고 들었는데요, 오늘은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먼저 좀 할까 합니다.
일본에는 ‘카쿠레 키리시탄’(숨은 그리스도인)이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250여년의 박해를 견디면서 숨어서 신앙생활하다가 신앙이 왜곡, 변형되어 버린 사람들을 말합니다. 규슈 지역에 있는 ‘히라도’라는 섬 안에는 인구의 1/3인 1천여명의 ‘카쿠레 키리시탄’이 있다고 합니다.
16세기 말,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인이 일본에 전교한 이래로 신앙인의 수가 많이 불어났지만 곧 박해를 받고 선교사들이 추방되어 목자없는 교회가 되고 말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잔인하게 죽어갔습니다. 한국교회의 순교자들이 그러했던 것과 유사한 모습이죠. 그래서 '키리시탄'(그리스도인)들은 숨어서 신앙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집안에서조차 십자가나 성화상을 드러내놓고 걸어둘 수 없을 정도여서, 집 안 가장 깊숙한 골방이나 벽장 등에 그것들을 모셔놓고 거기 들어가 기도하고 나오곤 했답니다.
그런데 그 후손 가운데 일부인 ‘카쿠레 키리시탄’들은 골방에 성화상을 모셔놓고 살던 선조들의 풍습을 이어받아서 지켰지만, 그 조상들이 믿었던 하느님은 이어받지 못하고 맙니다. 메이지유신 직후 종교의 자유를 얻어서 교회가 다시 세워졌지만, 그들은 교회로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저 자신들이 물려받은 풍습만을 지킬 뿐입니다.
그 풍습이란 대개 이러합니다. 성탄대축일 밤미사는 산모의 순산과 아이들의 건강을 기원하는 모임이 되어버렸고, 성체성사는 떡을 나누어먹는 모임, 묵주기도는 로사리오가 아닌 나무로 만든 패를 교환하는 의식으로 전락해버렸습니다. 신앙생활한다는 그 모습도 바뀌고 왜곡되었지만, 무엇보다 그 안에는 자기 조상들이 믿었던 하느님이 사라졌습니다.
오늘 복음말씀에서 예수님께 지탄받는 유대인들도 어쩌면 이와 다를 바 없는 듯 합니다.
모세는 구원자이신 야훼 하느님을 가장 잘 알려주었기에 위대한 예언자로 칭송받았고, 그가 하느님께로부터 받아서 전해준 계명과 율법도 사람들이 ‘출애굽 사건’과 같은 하느님의 구원을 체험하며 살수 있도록 인도해주는 데에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모세를 존경하고 율법을 존중할 뿐, 그 안에 계신 하느님을 발견하지 못합니다. 이 모습이 앞에서 언급한 ‘카쿠레 키리시탄’과 다를 것이 무엇입니까? 따지고 보면 신앙생활을 잘못 해 나감으로 인해 빠질 수 있는 이런 류의 위험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존재했던 듯 합니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겠지요.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빠질 수 있는 큰 위험 가운데 하나는 ‘나 중심의 신앙생활’입니다. 신앙생활이란 것이 내가 무엇을 하고, 어떻게 하고, 잘하느냐 못하느냐를 하느님의 계명을 잣대로 반성하는 정도로 생각해버릴 수 있습니다. '어떻게 신앙하느냐'에 골몰한 듯 보이는 이런 모습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어떤 방식과 모습으로 신앙해야 하는 이유'일 것입니다. 신앙의 이유와 목적 말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교는 신앙인의 이름으로 행하는 모든 것은 하느님을 발견하고 체험하기 위한 것임을 가르쳐줍니다. 어떤 선행도 그 이유와 목적 가운데 하느님이 없다면, 하느님이 중심에 계시지 않는다면 그것은 알맹이가 없는 신앙생활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나 중심’이 아니라 ‘하느님 중심’의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사순시기의 재계를 통해 어떤 면에서든 변화를 시도해 보며, '나 중심에서 하느님 중심으로' 돌려놓아야 할 것들을 두고 변화를 추구해야 합니다. 그것이 '돌이켜놓는 것', 곧 회개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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