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에서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밀이삭을 뜯는 것을 보고 예수님께 ‘저들은 어째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합니까?’하고 말합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그렇게까지 말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원래 유대인들이 지켜야 할 율법 가운데에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되는 것을 정해놓은 것이 무려 39가지나 되었다고 합니다. 제자들은 그 조항을 분명히 어기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안식일에는 일정 거리 이상을 걸어서는 안되고, 노동을 해서도 안되며, 불을 피워서 그날 먹을 것을 따로 마련할 수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밀이삭을 뜯어 그것을 손으로 비비면 껍데기가 떨어져 나가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을 입으로 불고 남은 것을 입에 털어 넣어서 허기진 배를 채우는 것입니다. 그런데 안식일이었기 때문에 밀이삭을 뜯는 것은 명백한 추수행위이고, 손을 비비는 것은 탈곡하는 것이고, 입에 털어넣는 것은 음식을 준비하는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이 모두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이지만, 안식일은 하느님만을 생각하고 하느님만을 위한 일을 해야 하는 날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행동인 밀이삭을 뜯어서 먹는 것조차도 명백히 안식일 규정을 어긴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유대인들의 율법에 따르자면 안식일을 만드신 하느님의 섭리에 대한 모독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제자들의 행동을 따지고 들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마르 2,27)라고 대답하십니다. 사실 안식일은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을 위하여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쉬신 것을 본받아, 휴식을 취하면서 세상 안에서 살아가는 기쁨을 누리기 위한 것이며, 가난하고 쉴 틈조차 없이 억눌린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지키는 날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위해서 그런 규정들이 생겨난 것이지, 사람을 못살게 굴기 위해서 법이 생겨난 것이 아닌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기존의 어떤 규정도 사람을 사랑하고 보호하는 것보다 중요하지 않다고 분명하게 가르치십니다. 하느님을 섬기기 위해 안식일을 지키는 것도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기 때문에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그만큼 소중하기에 하느님께서도 다른 어떤 모습으로가 아니라 사람이 되셔서 이 세상에 오셨던 것입니다.
이 사실을 믿는 우리 신앙인들은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나 일상생활에서 어떤 뜻있는 일을 행하는 것도 나를 비롯한 모든 사람과 생명이 사랑받기에 충분할 만큼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의식하면서 실천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환경보호를 소중히 여기는 이유도 하느님께서 우리와 모든 생명을 소중히 여기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망각한다면 사랑은 잃어버린 채 자신에게 불이익이 돌아올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환경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믿음은 잃어버린 채 자신의 안녕(安寧)만을 고집하는 옹졸한 모습이 되어버릴 수 있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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