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초등학교 등에서 아이들에게 교통질서 및 교통안전에 대해 교육할 때에 횡단보도를 건널 때에는 손을 번쩍 치켜들고 가도록 가르칩니다. 부모님들도 어린아이들에게는 그렇게 가르칩니다. 그런데 정작 아이들이 조금만 더 자라면 그렇게 잘 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제 개인적인 생각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정작 그렇게 가르치는 부모님이나 선생님은 횡단보도를 건널 때에 손을 들고 다니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손을 번쩍 치켜들고 횡단보도를 건너도 멈추지 않는 차량이 있고, 부모님이나 선생님 또한 손을 들고 횡단보도를 건너지 않는 모습을 목격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제가 새신부때에 생활하던 본당은 재래시장 안쪽에 위치하고 있었고, 시장 주변의 도로에서는 무단횡단을 하거나 교통신호를 지키지 않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었습니다. 그때에 저는 항상 남들이 도로를 건너가도 신호가 바뀌기까지 한참을 기다렸는데, 동행인이 있을 때에는 왜 사람들이 건널 때 같이 건너가지 않느냐고 질문을 받은 적도 있습니다. 동행인 입장에서는 좀 답답해 보였던 모양입니다. 그때에 제 대답은 성당 주변에서 자연히 성당의 아이들과 마주치게 되는데, 제가 성당 앞에서조차 교통신호를 지키지 않는 것을 아이들이 본다면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친다 한들 아이들은 듣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였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들은 사람들은 그 말씀이 율법학자들과는 달리 권위가 있다고 하면서 감탄합니다 : “이게 어찌 된 일이냐? 새롭고 권위 있는 가르침이다. 저이가 더러운 영들에게 명령하니 그것들도 복종하는구나.”(마르 1,27)
율법은 하느님의 뜻을 지키는 것이고, 하느님 나라의 모습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하는 길잡이입니다. 그러나 율법학자들은 그 조목조목을 해석하고, 법규정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를 이론적으로 가르칠 뿐입니다. 반면에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가 어떤 곳인지를 '직접 보여주셨습니다.' 마귀들린 사람이 있으니까, 그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 즉 마귀를 쫓아내고 악마에게 시달리는 고통에서 자유롭게 해주는 해방감을 맛보게 해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느님 나라에서 누리는 자유라고 가르치시는 것이지요. 단순히 하느님으로서의 능력이 있기 때문만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이 옳다는 것을 몸소 행동으로 직접 보여주시기 때문에 예수님의 가르침에는 권위가 있었다고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전해줍니다.
우리도 살아가면서 말하고 가르치고, 신앙을 전하려고 노력합니다만 그것을 직접 사는 모습으로 실천해보이지 않으면 아무런 힘이 없습니다. 설득력이 없습니다. 가정에서나 본당에서 사람들을 만날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가족들을 사랑한다고 해도 표현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주일에 성당 가는 것이 마땅하고 옳은 일이라고 하면서 주일미사를 가기 귀찮아 하는 아이들을 설득하지만, 어쩌면 성당에서 가르치는 것들이 지켜지지 않는 모습을 자연스레 학습해버린 아이들은 그 말이 틀리지 않았음을 알면서도 그다지 동의하지 않는 경우도 많죠. 교민사회의 울타리가 크지 않다보니 그 안에서 경험한 부정적인 어른들의 모습 때문에 신앙공동체를 경계하고 기피하는 아이들도 있죠., 신앙인 공동체에서도 비신자들과 별반 다르지 않게 자신을 '엄친아나 엄친딸'과 비교하는 부모님들의 모습, 성당에서는 선한 모습으로 대하지만 다른 곳에서는 그렇지 않은 듯 이중적이거나 위선적으로 느껴지는 누군가의 모습 등 때문에 말입니다. 성당이나 주일학교에서는 기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는데, 정작 그 시간 이후에는 그렇게 중요하다고 하는 기도를 하는 신자들을 자주 접하지 못하는 것도 마찬가지일 수 있겠네요.
오늘 복음에 나오듯 예수님의 가르침이 권위있었던 까닭은 단순히 그분의 말씀이 옳기 때문이 아니라, 그 옳음을 실제로도 실천하고 사람들에게 '진실한 현실'로 전달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옳다고 믿고 선하다고 지향하는 바를 누군가에게 특히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전한다면, 우리의 언행(言行)이 일치할 수 있도록 우리의 모습부터 먼저 돌아볼 수 있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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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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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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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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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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