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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강론

  예전에는 주일이 되어 동교민항에 가면 늘 성당입구에 구걸하는 분이 앉아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미사 후에 귀가하는 교우들이 돈을 주고 가는 경우도 흔했으며, 어린아이들이 잔돈을 주고 오는 모습도 흔히 볼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도 경험해 보신 일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간혹 어떤 이들, 특히 아이들이 이렇게 묻습니다 : ‘걸인이 사람을 속이는 것 같은데 도와주는 것이 잘 하는 것이냐? 아니면 도와주지 말아야 하느냐?’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때로는 구걸하는 사람이 나를 속이는 줄을 알면서도 도와주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나지 않아 외면할 때도 있을 텐데 말입니다. 이 경우, 저의 대답은 ‘구걸하는 이에게 적선을 베푸는 것이 옳은가’라는 질문을 달리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즉 적선을 베푸느냐의 문제보다 ‘그 사람을 위해 진정으로 도움이 되는 것이 무엇인가’를 고민하고서 선택하면 어느 선택이든 선한 행위가 될 수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구걸하여 돈을 쉽게 버는 것이 그의 삶을 오히려 피폐하게 만든다면 도와주지 않는 것이 맞을 수도 있고, 당장 지금의 굶주림이나 어떤 압박을 견디지 못하면 이후의 삶이 나아지리라는 보장이 없으니 적게나마 도움을 주는 것이 맞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결국 올바른 행위를 선택하는 것보다는 그렇게 행동할 올바른 이유를 찾는 것이 먼저가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이유에 사랑이 담겨있다면, 더 나은 방법도 차차 찾아나갈 수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오늘 1독서에서는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가 어떻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하느냐고 말합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곧 하느님을 사랑하는 일이라 했습니다. 어찌 보면 늘 듣던 말이고,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기에 새삼스러울 것이 없다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나 하나 제대로 건사하며 살기에도 빠듯하다고 느끼는 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되새겨보면 참으로 놀라운 말씀입니다.

  가깝고 먼 곳에서, 심지어 바로 내 눈앞에서조차 고통받는 이웃과 마주치게 될 때에 그들을 쉽게 외면해버리기도 하는 우리들의 모습,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과 내가 하고픈 것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때로는 하느님의 것을 쉽게 포기해버리는 우리들의 모습을 생각하면 ‘네 이웃을 보고서라도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잃지 말아라’는 이 말씀이 간절한 외침으로 다가옵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고자 한다면 우선 내 이웃을 사랑해야 하고, 다음으로 하느님의 계명을 지켜야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늘나라에서 하느님 앞에 서게 될 때에, 심판받는 기준은 얼마나 사랑하였는가 하는 것임을 분명히 가르쳐 주시지 않았습니까? 마태오 복음 25장에 나오는 양과 염소의 비유 있지요? 그 비유를 생각해 보십시오. ‘너는 내가 배고플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나그네 되었을 때에 따뜻하게 맞이한’ 사람들을 보시고 ‘여기 있는 형제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고 하시며 그들의 사랑실천을 칭찬하시고 격려하셨습니다.

 

  간절히 사랑한다면, 그 사랑을 표현하고 그 마음을 전하려고 애쓰기 마련일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하려고 노력할 때에도, 그 사랑이 진정한 내 마음이라면 표현하지 않고는 참지 못할 것입니다. 그 사랑을 누구에게 표현합니까? 바로 내 이웃입니다. 그래서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보이는 이웃을 사랑하려고 노력하다 보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사랑을 그 이웃들을 통해 다시금 체험하게 됩니다.

  비록 우리는 이웃을 사랑하는 데에도, 하느님을 사랑하는 데에도 서투를 때가 많습니다만, 그럼에도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지금, 오늘, 그리고 앞으로 계속해서 행해야 하는 것이기에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아울러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은 하느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에 우리도 하느님을 닮아서 사랑한다는 것을 잊지 않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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