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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강론

  오늘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의 아버지 즈카르야와 어머니 엘리사벳이 세례자 요한의 이름을 짓는 대목을 전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이름을 따라 즈카르야라고 해야하지 않느냐는 사람들의 의도와는 달리, 엘리사벳은 아기의 이름을 요한이라고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늙어 죽을때가 다 되어 임신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웃는 바람에 말을 하지 못하게 된 즈카르야 역시도 아들의 이름을 요한이라고 해야한다고 작은 서판에 적습니다. 그러자 즈카르야의 혀가 풀려 말을 하게 됩니다.

 사람들의 반대와 몰이해 속에서도 하느님의 뜻을 따르고자 노력한 결과로 즈카르야의 혀는 풀리고, 아기의 이름은 요한이 됩니다. 요한이라는 이름은 ‘하느님께서 은총을 베푸신다’ 혹은 ‘하느님께서 자비를 베푸신다’는 뜻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부모들의 행위로 붙여진 ‘요한’이라는 이름은 그 이름값을 합니다. 요한의 삶을 통해서 말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성전에서 드리는 예배와 율법준수를 통해서 하느님의 은총을 받았지만, 이제는 예수님을 통해서, 다시 말하면 어떤 것을 통해서가 아니라 하느님께로부터 직접 그 은총을 받게 됩니다. 요한은 하느님이신 예수님께서 오시도록 준비하는 사람으로서, 사람들에게 회개하도록 소리치고 세례를 받도록 복음을 선포합니다. 하느님을 모셔들일 수 있도록, 은총에 눈뜰 수 있도록 한 사람입니다. 요한의 이러한 준비를 통해 사람들은 하느님의 은총과 자비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의 이름을 정하는 일 하나를 통해서도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하는 뜻을 드러내보이십니다. 그 사람 하나를 통해서도 모든 사람을 구원에로 이끄시고 마음으로부터 준비시켜주십니다. 이것이 오늘의 복음말씀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하느님의 창대한 계획입니다.

 

  내가 때로는 하느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 고통을 감수해야 하지만, 그 고통을 통해서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는 하느님의 자비가 드러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합시다. 그리고 이 순간에도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준비해두시고 기다리시는 우리의 아버지 하느님께 감사드리는 마음을 잊지 않도록 함께 노력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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