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티나 지방은 사막으로부터 건조하고 먼지가 많은 모래 바람이 불어와 눈먼 사람이나 눈병환자가 상당히 많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복음서에서도 앞 못 보는 사람이 눈을 뜨는 대목이 종종 보이곤 합니다.
오늘도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는데 눈먼 사람 둘이 따라오며 예수님께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마태 9,27) 라고 간청합니다. ‘다윗의 자손’이란 호칭은 메시아를 가리키는 표현인데, 이사야 예언자는 메시아 시대의 특징을 “그 때에 소경은 눈을 뜨고 귀머거리는 귀가 열리리라.”(이사 35,5)라고 예언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진정한 메시아를 알아보는 표지(標識) 가운데 하나가 예언자 이사야의 예언처럼 눈먼 이의 눈을 뜨게 해주는 것이라 믿고 있었습니다. 눈먼 두 사람은 이러한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을 메시아로 고백하며 자신들의 눈을 뜨게 해주시기를 청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예수님께서는 이들에게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으시고 당신의 길을 가셨습니다. 어느 ‘집 안으로 들어가시고’ 나서야 그들에게 “내가 그런 일을 할 수 있다고 너희는 믿느냐?” 하고 물으십니다.(28절) 장소의 이동이 있었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 가운데 이 점에 주목해 보고자 합니다.
사실 다윗의 자손이란 표현은 자칫 정치적 해방자로 오해될 여지가 있는 표현이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로마의 지배를 받는 입장에서 이러한 표현은 상당히 민감한 반응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도 많은 이들의 눈에 띄는 곳에서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으신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을 눈으로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지만,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 눈먼 두 사람은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다른 이들보다 확신을 가질 가능성이 부족했지만 그들은 굳게 예수님을 믿었고 어렵사리 그분을 찾아왔을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들의 청원에 즉각 응답하지 않으시는 예수님에게서 실망해버렸다면, 그래서 예수님께서 자신들의 믿음을 확인하는 질문을 건네시기까지 기다리지 않고 그분을 떠나버렸다면 어땠을까요?
사실 예수님께서는 두 사람이 믿고 바라는 대로 치유되도록 해주셨고, 과연 그들의 눈이 열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믿음을 요구하셨지만, 그럼에도 믿는대로 눈을 뜰 수 있도록 해주시는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눈 멀었던 두 사람이 믿음에 회의를 가질 수도 있었을 위험했던 짧은 순간, 곧 예수님께서 길거리로부터 집에 들어가시기까지의 시간은 우리도 늘 경험하는 시간이 아닌가 합니다. 내가 원하는 때에,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즉각 응답을 주시기를 바라는 조급한 마음이 ‘믿음의 확신’이라고 착각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주실 수 있는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분의 자비하심도 믿지만, 동시에 그러한 모든 것을 당신 뜻대로 하실 수 있는 하느님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마음도 함께 드러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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