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축일을 지내는 분들은 베트남의 순교자들입니다. 베트남교회가 박해를 받음으로 수십만에 이르는 순교자들을 내면서까지 신앙을 지켜낸 것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그 시기와 양상이 우리 한국교회의 그것과 유사하다는 것도 기억해 보게 됩니다.
몇 년 전, 근무하던 대학교에서 조직한 봉사단과 동행하여 베트남에 간 적이 있습니다. 그 당시 일정 가운데 호치민 외곽의 빈민촌 마을에 있는 성당을 찾아가서 그 본당 소속의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 집을 찾아다니며 인사나누며 생필품을 나누는 일을 한 적이 있습니다. 집만 그럭저럭 쓸만하고 변변한 가재도구 하나 없는 곳이 다수였는데, 적잖은 가정에서 특이한 현상이 하나 있었습니다. 집안으로 들어서는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것이 성모상이었는데, 그 크기가 가정용 치고는 과도하게 크다는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다른 기회에 들은 이야기로는 오랫동안 유교와 불교문화에 젖어있던 베트남 사회에서는 집안에 큰 불상을 모셔놓던 풍습이 흔했는데, 가톨릭신앙을 받아들이면서 이것이 성모상으로 대체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합니다.
아무튼 21세기를 맞이하여 아시아의 교회들 가운데 가장 활기있게 성장하고 있으며 성소(聖召)에 응답하는 이들이 많은 교회를 베트남 교회라고 하는데, 그 원동력이 오늘 기념하는 베트남 순교자들의 희생과 증거가 아닌가 싶습니다.
19세기 무렵, 제국주의의 침탈을 우려하던 베트남 왕실은 가톨릭교회를 끔찍하게 박해하기 시작합니다. 둥락 신부님도 당시 지역교회의 중심인물로 지목되어 끈질긴 추적을 받다가 결국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당하고서 순교에 이르게 됩니다. 우리나라의 순교성인들이 겪으셔야 했던 고난과 닮은 모습을 연상할 수 있습니다.
조선인이든 베트남인이든, 이 모든 순교자들이 그토록 염원하고 목숨을 걸고서라도 지키고자 했던 것, 그것은 오늘 복음에 나오는 말씀 곧 “너희가 보고 있는 저것들이,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고 다 허물어질 때”(루카 21,6)를 준비하는 믿음이었을 것입니다. 시한부 종말론에 현혹되면 세상종말은 인간이 생각하는 어느 한 순간에 일어날 무서운 일 정도로 여기겠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세상종말에 관한 시각은 위의 복음말씀처럼 ‘지금 이 세상과는 다른 질서와 모습으로 남아있게 될’ 하느님의 통치가 완성됨을 바라봅니다. 즉 하느님의 뜻에 온전히 부합하는 삶을 사는 것에만 힘쓰면, 헤아리기 힘든 ‘그때와 그 시각이 언제인지’는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마음으로 오늘을 열심히 사는 것이지요.
세상 종말의 그때가 언제라고 여기저기서 외치는 소리에 기웃대지 말고 오늘 실행할 하느님의 뜻에 더욱 집중하는 삶의 자세, 그것이 세상 마지막 날을 의식하는 연중시기의 마지막인 이번 주간에 교회가 ‘성서주간’을 지내며 하느님의 말씀을 읽을 것을 다시한번 강조하는 뜻에도 부합하는 모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