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 사람들이다.”(루카 8,21) 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혈연(血緣)보다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것이 당신과의 관계형성, 혹은 당신께서 누군가를 사랑해야 할 더 중요한 이유라고 말씀하시는 듯 합니다. 이는 혈연을 부정하거나 무시한다기보다는 그만큼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것을 최우선 순위에 두신다는 말씀으로 알아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감당해야 할 역할과 책임, 의무 등이 다양하기 때문에 종종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됩니다. 어떤 것을 선택하려면 어떤 것을 포기해야 하고, 또 어떤 것을 놓치지 않으려면 어떤 것은 지금이 아닌 나중의 어느 때로 미루어두어야 합니다. 따라서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것과 실행하는 것을 미루거나, 미루어둘 수밖에 없는 상황을 쉽게 허용하는 것은 아닌지를 오늘의 말씀을 들으며 돌아보게 됩니다.
요 며칠 동안, 제가 몇 달 만에 북경으로 돌아가게 되면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 혼자 생각해봅니다. 비록 미사거행은 어렵지만, 고해성사가 필요한 이들도 있을 것이고, 북경을 지키고 계신 교우들과 아직 일면식(一面識)조차 없는 경우도 있으니 인사도 나누면 좋을 것이고, 그 외에도 할 일들이 드문드문 생각이 납니다. 또한 미사를 드리지 못함으로 인해 안타까워 하는 교우들과 한편으로는 주일에 미사참례하러 가지 않는 것에 익숙해지고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교우들의 모습도 생각해봅니다.
만약 우리 가운데 누군가가 주일미사를 드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 죄스럽다 느낀다면, 종교적 계율로 인한 일종의 구속(拘束)에서 해방된 듯한 느낌에 현혹되지 않음을 감사했으면 합니다. 혹은 매주 일요일이 주일이라는 사실조차 망각할 만큼 무뎌지고 미사참례를 하지 않음으로 편해진 것에 너무 익숙해져 있다면, 때로는 주일미사 참례를 더욱 기쁘고 편안하게 하지 못했던 적이 없는지를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많은 경우에는 주일미사 참례를 거부하거나 싫어해서가 아니라 주일미사에 참례함으로 인해 나의 다른 역할이나 임무에 지장을 초래할 수도 있고 부담이 가중된다 느낄 수 있어서 주일미사는 더욱 참례하기 어려운 일이 될 수도 있지 않습니까?
누가 잠을 제대로 자지 않아 매우 피로한 상태로 주일미사를 가자면 미사는 그만큼 힘든 의무가 될 것입니다. 바쁜 일을 좀 더 미리 챙겨두지 않은 채 주일미사를 가자면 미사참례 후에 고단할 일로 마음이 복잡할 것입니다. 물론 누구나 감안할 만한 부득이한 상황을 차치(且置)하고라도, 미사 참례를 통해 “말씀을 듣고”, “성체를 모시고”, “말씀을 실행할 결심을 세우는” 일을 우선시하기 위해 주변을 정돈해두는 것도 우리 신앙인이 이 “주일을 거룩히 지내는 평범한 일”을 최우선시하는 모습일 것임은 분명합니다.
미사가 없기 때문에, 미사의 소중함도 더욱 많이 깨닫거나 그리워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기회에, 저나 우리 교우들도 미사를 통해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예수님께서 가장 아끼고 함께 있고파 하는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우리 생활 가운데 필요한 주변정리들을 좀 해두면 더 좋지 않을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