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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강론

  오늘은 한국의 순교성인들을 기리는 대축일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신앙의 자유를 가져다 준 씨앗은 ‘신앙선조들의 순교’였습니다만, 그럼에도 지금 우리의 삶과는 동떨어진 것처럼 들리는 단어 역시 ‘순교(殉敎)’가 아닌가 합니다. 비록 피흘리는 참혹한 과정을 본받는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우리가 본받아야 할 순교의 정신과 그 본질이 무엇인지를 다시금 생각해보는 하루가 되었으면 합니다.

 

  최근 ‘순교’라는 말을 들었던 기억을 더듬어보면, 지난 달 중순에 서울 광화문에서 있었던 집회를 주도한 사람 가운데 한 목사님이 ‘나는 순교할 각오가 돼 있다’고 했던 것이 생각납니다. 정치적, 이념적 판단을 떠나 작금의 한국사회가 감염병의 슬하에서 여전히 고통받는 데에 일조하는 행동을 하면서 ‘순교’라는 말을 갖다 붙이는 것에 저는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진짜로 순교할 결심이라는 것은 정작 신앙을 지키기 위해 죽음까지 겪어야 할 구체적 위협이 등장할 때에나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기도 했고, 순교라는 것은 근본적으로 ‘증거(證據)’하는 행위여야 하는데 과연 그 사람은 무엇을 증거하고 싶었는지가 불분명해 보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초대교회 이래로 많은 순교자(殉敎者)들이 있었습니다. 그들 중 우리에게 그 삶과 죽음에 대해 알려진 분들도 계시지만, 이름도 모른 채 그들의 죽음만을 알게 된 무명의 치명자(致命者)들도 계시고, 박해로 인하여 고통받으며 순교자들처럼 죽음 직전까지 갔다가 죽음을 면한 이들을 ‘증거자(證據者)’라고 부르며 공경하기도 했습니다. 피흘려 죽음을 받아들이는 행위 자체보다는 죽음의 위협까지 무릅쓰며 지켜내야 할 만큼 신앙을 ‘숭고(崇高)한 가치’로 여기는 자세가 순교의 기본인 것입니다.

 

  숭고한 것은 주변인들에게 ‘경외심(敬畏心)’을 불러일으킵니다. 한국의 많은 순교성인들이 순교하시는 장면을 보면 신앙을 모르던 이들이나 옥리(獄吏), 형리(刑吏) 등이 그분들의 꿋꿋한 의기를 보고서 ‘신앙이 무엇인가, 하느님이 누구이신가’를 고민하거나 하느님이 계심을 부정할 수 없다는 느낌을 가졌다고들 합니다.

비록 자신의 확고한 신념을 강하게 표현하기 위한 것이라 할지라도, 하느님처럼 신적(神的)이거나 숭고한 대상에 대한 믿음 때문이 아니라면 ‘순교(殉敎)’를 장담하거나 운운하는 것이 그 고귀한 가치를 폄하하는 것이 될 수 있겠다 싶습니다.

 

  그러므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비록 목숨을 내놓을 만한 위협이 아니라 할지라도 우리의 신앙을 순교자의 후예답게 지켜나가고자 한다면, 순교자들이 그렇게 지니고 증거했듯이 우리의 신앙을 ‘숭고한 가치’로서 간직해나가야 할 것입니다. 세상살이 속에서 이루어내기가 참 어려운 일이겠지만 우리의 마음 안에서 신앙보다 더 중요한 것이 쉽게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면 좋겠지요. 적어도 어떤 결정이 신앙에 위배되는 것이라면 그런 방식으로 선택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뒤따라야겠습니다.

  또한 내가 가진 신앙에 떳떳해서 타종교인이나 비종교인들로부터도 경외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신앙인이 되면 좋겠지요. 제가 신부라고 해서 모든 사람이 존중해주지는 않을뿐더러, 그것을 바란다면 대접받기를 좋아하는 것 같아 저도 탐탁치 않습니다. 하지만 ‘저 신부가 어떻더라’고 하면서 저를 바라보는 누군가의 종교 여부에 상관없이 저의 행적이나 모습을 쉽게 폄하할 수 없는 삶을 살아서 존중받는다면, 교우들에게서나 지역사회 안에서 우리가 가진 신앙에 대한 존경심 더 나아가 경외심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을지 모르죠.

  그리고 이러한 존경심 혹은 경외심이라는 것은 어느 누구라도 인정하고 동의할 수 있을 만한 것이어야 합니다. 순교자들이 목숨까지 바쳐가며 지키고 싶은 것을 다른 이들은 알지도, 이해하지도 못했지만 ‘무언가가 있구나’ 하는 생각만큼은 가지는 경우가 많았지요. 그 무언가가 과연 무엇인지 우리에게 누가 물어본다면 어렴풋하게나마 ‘그 무엇’에 대해 피력할 수 있을 만큼의 ‘믿음의 근거’도 가지고 있어야 하겠습니다.

 

  유혹도 많고, 절대적이고 확실한 것도 없는 듯이 느껴지는 때가 많은 시대입니다. 그래서인지 순교자들의 증거했던 그 ‘숭고함’이 우리의 믿음 속에 더욱 깊이 뿌리내리고 있어야 함을 다시 곱씹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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