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주님승천대축일입니다.
예수님의 승천(昇天) 사건은 부활의 완결입니다. 사실 부활과 승천은 시간적으로나 단계적으로 구분되는 사건이 아닙니다만, 우리 인간이 ‘부활하여 얻는 영원한 생명’을 이해할 수 있는 방법으로 이루어진 눈높이 교육법이라고 이해하면 적절할 듯 합니다.
본래 주님의 승천 사건 또한 인류구원의 중요한 표지이기 때문에, 교회는 이날을 성대하게 경축해 왔습니다. 이런 전통관습이 남아있는 서구권에서는 부활대축일로부터 40일째 되는 날, 그러니까 부활 제6주간 목요일을 공휴일로 지냅니다. 당연히 의무대축일로 지내는 곳도 많구요. 일부 국가와 지역에서는 주님승천대축일로부터 성령강림대축일까지 기간에 학교가 방학을 하고 국가공휴일로 지내는 곳도 있습니다. 굉장히 기쁜 날이라는 뜻이겠죠?
그런데 저 스스로나 공동체 차원에서 볼 때, 오늘처럼 주님승천대축일을 보내면서도 그저 무덤덤하고, 크게 기뻐하지 못한 채 이 날을 보낸 때가 많았음을 떠올려봅니다. 단지 문화와 환경의 차이 때문일까요, 아니면 다른 이유가 또 있지 않을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승천”(昇天), 곧 하늘로 오르다는 것은 ‘예수님이 지니신 하느님으로서의 영광’ 곧 신성(神性)을 드러내는 행위입니다. ‘하느님 아버지께로부터 오신 분’, ‘위로부터 온 것을 모두 알고 계신 분’이라는 살아 생전의 그분 말씀이 참되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며, 이로써 그분이 진정으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입중하는 것이죠.
또한 동시에 십자가의 희생까지 치르며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온전히 실행하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보상이기도 합니다. 하늘나라의 복음을 전하는 예수님의 사명을 이어받은 제자들 곧 모든 인류에게 약속된 보상을 미리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지요.
그런데 이 승천사건을 통해 드러난 영광을 얻기 위하여 우리가 먼저 이루어 내야 할 사명을 주십니다 :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마태 28,19-20)
이 말씀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그로 인해 얻게 될 영원한 생명에 대해 알리라는 것입니다. 바로 이 메시지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홍보’, 혹은 신앙의 ‘증거’라는 사명과 연결됩니다.
그래서 위의 말씀을 토대로, 주님의 승천사건을 기념하며 기쁨을 누리지 못함이 어쩌면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 아닌지 몇 가지 물음을 던지며 다시 생각해봅니다.
먼저, 우리의 신앙생활은 알리고 싶은 것입니까? 아니면 내가 받아들이고 잘 따라 살면 그것으로 만족하고, 다른 이들에게 알려줄 만큼은 안되는 것입니까?
알려줄 방법이 없어서 고민이라 하더라도, 이런저런 방법을 찾고 또 시도해보는 가운데 적절한 방안을 찾아나가는 것이 아니라, 뾰족한 수가 없을 듯 하니 그저 가만히 있어 버리는(그 정도밖에 안되는) 것이 우리의 신앙입니까?
다음으로, 신앙을 타인에게 알려주고 싶을 만큼 잘 키워보려고 노력할 열성이 부족하지는 않습니까? 주변여건이 허락지 않아 신앙을 알리고 누군가에게 권장하기에 여의치 않다 싶을 때, 이로 인해 안타까움을 느껴보지 못했다면 과연 우리에게 알리고 싶을 만큼 확신에 찬 믿음에 대한 열망이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알려주고자 할 만큼 잘 알고 싶어하고, 알려주지 않고는 못 배겨낼 만큼 너무 좋은 것이라는 확신과 그로 인한 기쁨이 있을 때에 예수님의 승천이 ‘미래의 내 모습’이요, 또한 나에게 메시지를 주는 기쁜 사건이 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누려야 할 기쁨의 원천은 “하느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 때문에 품게 되는 희망”임을 되새기며, 이 희망의 증인으로 살아가는 각자의 모습을 머리와 마음으로 그려보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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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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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신부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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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 되물어 봅니다. 아 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