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는 호교론자보다 증거자가 더 필요합니다.”(교황 비오 12세)
전임 신부님께서 집무실 벽에 붙여놓은 문구입니다. 말하기보다 직접 삶으로 실천하려고 무척 노력하셨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사는 것이 말하기보다 힘들다는 것을 경험으로 이미 알고, 절실하게 노력하는 부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들을 지킬 것입니다.”(요한 14.15) “내 계명들은 받들어 지키는 사람이야말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입니다.”(요한 14.21) (200주년 기념 성경)
사람들은 ‘계명’이란 말을 들으면 어떤 느낌이 들까, 생각해 봅니다. 다른 사람들도 저처럼 부담스러울까,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계명’을 ‘인생사용지침’ 정도로만 생각하면 계명을 욕되게 하는 것일까라는 좀 뚱딴지같은 생각도 해 봅니다. 그러면 계명이 덜 무겁게 느껴져, ‘가벼워지면 들고 다니기가 좀 수월할지도 모르겠다.’ 그런 생각이지요.
요즘은 집에서 기르는 고양이들도 많지만, 길거리에 버려진 고양이, 또 야생 고양이들도 있습니다. 야생 고양이들은 입가가 빨갈 때가 많습니다. 금방 식사를 했다는 표시지요. 새들이 고양이에게 잡아먹히지 않으려면 방심을 하면 안 됩니다. 늘 경계를 하고 민첩하게 움직입니다. 딱새는 작지만 모양도 예쁘고 지저귀는 소리도 농부의 귀를 즐겁게 합니다. 인가 주위에 둥지를 틀고, 사람들과 좀 친근한 텃새라고 생각됩니다. 주로 암수 두 마리가 함께 다니는데 한 마리만 있는 딱새를 보면 애틋한 마음이 듭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삶의 나침판, 삶의 지침이 ‘계명’이고, 우리 사람들이 하느님을 사랑하는 방법이 계명을 사는 노력일진대 부활의 생명, 영원한 생명을 바라보며 살아가도록 또 새로이 노력해야겠지요.
‘오뚝이’는 넘어지는 것을 가정하고 만들어졌다는 게, 만든 사람의 인생에 대한 이해가 놀랍습니다. 주님께서는 나약해 넘어지고, 잘못이 아파 눈물 흘리는 우리들을 돕기 위해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어쩌면 우리를 오뚝이로 이미 알고 계셨으리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그토록 사랑하시는 줄 몰랐습니다.” 어떤 책의 제목인데, 우리를 위해 살과 피를 내놓으시고, 하느님의 어린양이 되신 주님의 사랑을 참 잘 표현한 것 같습니다. 변명하지 말고 우직하게, 오뚝이같이 또 살 수 있기를 염치 불고하고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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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황금본당 주임 박병래 안토니오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