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독서 말씀에 나오는 내용은 예루살렘 이외의 지역에서 최초로 교회공동체가 형성되었던 안티오키아 교회의 에피소드에 관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을 중심으로 시작된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이방인들에게도 개방되며, 율법에 규정된 할례법을 어떻게 적용시켜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가 제기됩니다.
여기서 눈여겨볼 것은 ‘사도들과 원로들이 이 문제를 검토하려고 모였다’(사도 15,6)는 장면입니다. 역시 유대인들이었던 사도들에게 있어서도 당연시되는 율법의 규정을 두고 어찌해야 할지 검토를 하려 회의를 열었다? 웬지 그냥 율법을 강요해서는 안될 것 같은 어떤 강한 이끌림을, 그러나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명백한 규정은 없는 그런 상황에서 이루어진 반응입니다. 이 회의가 그리스도교회 최초의 공의회(公議會)라고 불리는 예루살렘 사도회의가 됩니다.
말로는 뚜렷이 설명할 수 없지만, 율법과 같은 법률과 규정처럼 확실한 근거는 없지만 무엇이 주님에 맞는 것이며 신앙인다운 선택인지를 찾아가는 이런 감각적인 모습을 두고 교리용어로 ‘Sensus Fidei’, 우리말 번역으로는 신앙감(信仰感)이라고 합니다. 예전에 한국에서 생활할 때에, 특히나 양질의 교육을 받지 못한 채 일생을 살아오신 어르신들 가운데에서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웬지 그렇게 해야 할 것 같은 생각 때문에 이렇게 했는데 잘 한 건지 모르겠습니다’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교리적으로도 옳은 선택을 하신 경우를 종종 보았더랬습니다. 이 가운데에서 신앙생활 중에 보고 듣고 습관화된 어떤 경험을 근거로 하여 이루어진 이 '감각적 행위'를 통해, 그분들이 비록 설명은 논리적으로 못하더라도 올바른 신앙을 가지고 살아오셨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이를 통해서 성령의 이끄심에 대해서 체험하게 되기도 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 “내 안에 머물러라. 나도 너희 안에 머무르겠다.”(요한 15,4)
복음은 나 혼자의 힘으로가 아니라 예수님과 함께 고민하고 선택하며 행동하여 열매를 맺는 것을 이야기하는데, 살아있는 ‘신앙감’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바로 이 말씀이 이루어지고 있는 삶의 자리이며 주님과 우리가 서로 안에 머물러 있어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생기있는 영적 상태임을 일러주고 있습니다.
물론 ‘소 뒷걸음질치다 쥐 잡듯’ 우발적인 결과에 만족하기만 할 것이 아니라, 이를 통해 신앙인의 바른 선택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학습해 나가고 이후에는 확신을 가지고 같은 선택을 할 수 있어야겠습니다만, 주님의 뜻을 모두 다 헤아리지 못하기도 하는 우리 자신의 부족함을 염두에 둔다면 이 신앙인의 영적 감각, ‘신앙감’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고 또 성령의 도우심을 늘 청하면서 신앙인답게 판단과 결정을 해나가려는 자세는 우리가 주님과 하나되어 더 많은 구원의 열매를 맺는 생기있는 신앙인으로 살도록 지켜줄 것입니다.
감염사태로 인한 시간이 100여일을 지나고 있습니다. 제가 감염사태 발발 직전에 두발을 정리하고 북경에 온지라, 그 시간을 가늠하고자 이때껏 이발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 귓자락에는 더듬이달린 곤충이 자라고, 목덜미에는 갈퀴가 무성한 맹수가 자라고 있습니다.(*아름다운 모습이 아니라 사진은 생략하오니, 재주껏 상상해보시면 되겠습니다~) 이런 귀찮은 일을 하게 된 동기는 사태의 장기화에 따라 그 시간에 대해 점점 둔감해지고 있고, 이 둔감함 때문에 손에서 놓지 말아야 할 것들을 놓아버릴 수 있다는 막연한 생각 때문입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많은 것에 둔감해지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 모두 "감을 잃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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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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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 "감을 잃지 맙시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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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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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지않아 신부님에게서 예수님의 헤어스타일을 뵈올 수도...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