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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강론

 

  복음말씀의 내용을 그 흐름을 따라 읽다 보면 중대한 전환점이 되는 행위가 등장합니다 : 제자들이 예수님을 "붙들었다"는 것입니다.

  이야기가 시작될 무렵, 제자들이 먼저 예수님을 질책합니다.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예수에 관한 '유명한 사건도 모른다'(24,18)면서 말입니다. 그리고는 설명이 이어집니다.

 

  이제 예수님의 질책이 시작됩니다. 그 예수의 수난과 죽음이라는 사건 속에서 참된 메시아의 정체와 그 안에 숨겨진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지 못한다, '마음이 굼뜬'(24,25) 이유로 믿지 못한다고 말입니다. 그리고는 설명이 이어집니다. 

 

  이 대화 후에 쌍방간의 관계에 변화가 생깁니다. 우연히 같은 방향으로 길을 가다 만난 길동무 정도에서, 일부러 그 사람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 행로를 변경할 수 있는 관계로 말입니다. 전환점이 되는 행동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붙들었다”(24,28)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더 멀리 다시 말해 제자들과는 다른 자신만의 길을 가고자 하실 때, 제자들은 그분을 붙잡고는 함께 있고자 했습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께 마음을 열었던 것이다.

그리고는 함께 있는 동안 빵을 떼시는 장면에서 예수님을 알아보고, 그순간 가슴이 뜨거웠음을 고백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이 갈 행로가 바뀝니다 :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가, 예수님 부활의 증인이 될 제자들의 공동체에 남아있게 됩니다.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이 그러했듯 서로를 붙들어준다는 행위가 우리의 구원에도 필요합니다. 함께 있으려면, 먼저 제안을 하고 붙잡으려면 내가 먼저 자신을 낮추거나 상대방에게 맞추거나 하는 ‘양보’와 ‘희생’이 필요합니다. 밥을 같이 먹으려고 원해도 가끔은 내가 밥을 사는 정도의 감수해야 할 것이 있듯, 제자들이 함께 묵어가기를 예수님께 청한 것은 일종의 ‘請客’인 셈입니다.

 

  구원의 길로 혼자가 아니라 ‘함께’ 가기 위해서, 서로를 배제하거나 누가 자신만의 길을 제멋대로 가도록 방관하고 내버려두는 것이 아닌, ‘서로를 자신에게서 멀리 떨어지지 않도록’ 붙들어주어야 합니다. 용서를 할 때에도 상대방으로부터 내 마음이 너무 멀리 떠나가지 않도록 붙들고, 상대방이 나에 대한 오해나 미움으로 인해 너무 멀어지지 않도록 화해의 가능성을 열어둘 수 있는 최소한의 도리와 이웃사랑을 보이고자 노력해야 합니다. 봉사직이나 모임에 초대하기 위해서도 이렇게 관심으로 배려하고 인도하는 마음이 우선해야 합니다. 새롭게 공동체에 나온 이를 반기는 것 역시 그 사람이 어색함이나 여러 가지 생각, 체험 등으로 인해 쉽게 떠나가지 않고 함께할 수 있도록 붙잡아주는 모습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부활의 증인이 되기 위하여 무엇을 가장 먼저 붙잡아야 합니까?

쉽게 놓아버리고 떠나보내는 것 가운데 붙들어야 할 것들이 있다면 시급히 붙들어야 합니다. 그러한 노력 속에, 우리도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처럼 부활하신 예수님과 그분의 사랑을 체험하고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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