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4주일입니다. 이날은 ‘작은 부활절’이라고 부르며, 사순시기에 입는 자색제의보다 밝은 ‘장미색(분홍색) 제의’를 입음으로써, 부활절이 가까웠음을 생각하게 하는 전통이 있습니다. 이를 테면 사순시기의 ‘반환점’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절반 가량을 지났다고 할 때 가지는 같으면서도 다른 생각이 있지요? “벌써 절반이나 왔어?” 라거나 혹은 “아직 절반이나 남았네?” 라는 생각 말입니다. 장기전(長期戰)에서 절반 가량을 달려왔다고 하면 많이 지칠 수 있는 때입니다. 그 피로함과 괴로움이 더 크게 와닿는다면 남은 절반은 너무도 먼 여정, 비현실적인 시간일 것입니다. 반면에 그 힘겨움에 비해 보람, 기대감, 희망, 목표의식, 정신력 등이 더 크다면 느낌이 다를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사순 제4주일은 ‘부활을 준비하는 그리스도인들이 극기와 절제를 통하여 새 사람으로 거듭나는 변화의 과정에서 힘을 내도록 북돋우는 전환점’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다른 의미에서도 반환지점을 지나고 있는 듯 합니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하여 미사거행이 중지된 지도 두달이 지났습니다. 현지의 안정화 추세와는 달리 국외의 많은 지역이 감염확산 일로에 있어 이곳도 각종 검역규제가 강화되는 분위기이지만, 감염사태로 인한 여파가 종식되기까지의 시간을 어림잡아보면 대략 절반쯤 지나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간이 길어질수록 감염사태의 여파와 충격이 더 커질 것이고, 이로 인한 우려와 지금 겪는 갑갑함과 불편함 등이 우리의 마음을 조급하게 몰아붙이기도 합니다. 이 사태를 완전히 이겨내기 위해 필요한 긴장감과 집중력이 흐트러지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아직 적잖은 시간을 견뎌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지금껏 노력해온 것들이 수포로 돌아가지 않도록 새로이 마음을 다잡고 ‘이제 겨우 절반밖에 오지 못했다’는 푸념 속에서 시간을 헤아리지 않았으면 합니다.
오늘 복음에도 예수님을 만난 한 사람의 인생의 전환점이 등장합니다. 선천적으로 눈이 멀었던 이는 당시 이스라엘의 관념에 따라 ‘죄가 많은 사람’으로 취급받습니다. 그 죄가 누구의 것이든 어쨌거나 죄많은 이의 혈통에서 태어났다며(요한 9,2) 차별대우를 받습니다. 그는 하느님을 믿는 이스라엘 백성의 한 사람이었지만, 하느님의 법을 따라 의롭게 살아갈 권리와 기회조차 쉽게 얻지 못했습니다. 죄인이라고 낙인찍혔고, 결론지어진 사람이니까요.
앞으로도 평생을 그렇게 죄인으로 살아야 할 것 같았던 이 사람에게 ‘새 삶을 살아갈 전환점’이 옵니다. 예수님을 만났고, 그분의 도우심으로 눈을 뜨게 되었고, 그가 죄가 많은 사람이 아니라고 인정을 받습니다. 여기서부터 눈 멀었던 이의 삶이 바뀝니다. 단순히 앞을 볼 수 있게 되었고, 죄인취급을 받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감히 헤아릴 수도, 말할 수도 없는 사람이었지만 이제는 당당히 ‘예수님을 주님’이시라고 고백할 수 있는 사람으로 거듭납니다.(요한 9,38)
실제로 그를 ‘완전히 죄중에 태어난 사람’(요한 9,34)이라고 몰아붙임으로써 삶의 터전까지 위협하는 이들 앞에서조차 그는 당당히 예수님께 대한 믿음을 고백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치유의 기적을 통해 온전한 믿음을 얻었고, 그 믿음을 잃지 않도록 노력하며 증언할 수 있는 용기있는 사람으로 거듭났습니다.
사순시기의 전환점에 왔다고 하여 우리 인생의 전환기에 이른 것은 아닐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부활을 통해 얻게 될 영원한 새 삶을 살 ‘새로운 인간’으로 거듭나는 변화의 여정에서 지치지 않고 힘을 내어야 할 때임에는 분명한 듯 보입니다. 전환(轉換), 곧 극명한 변화의 기회를 놓치지 않음으로써 참된 신앙인으로 인정받았던 복음속의 ‘눈 멀었던 사람’처럼 우리도 이 전환점이 되는 시간을 더 가치있게 잘 보내야 하지 않을까요?
부활의 때를 향한 전환점에서 서둘러 남은 기간 동안의 회개의 삶에 집중하고, 감염사태의 시간 속에서도 우여곡절 끝에 전환점까지 도달했다는 가냘픈 안도의 한숨을 통해 지나온 만큼만 더 잘 견디자고 서로 다독일 수 있는 나날을 보냈으면 합니다.
하루하루가 똑같이 느껴져 소중한 것들에 대한 감각이 무뎌질 수 있는 우리에게, 이 ‘전환점’의 의미를 통해 지나온 시간과 앞으로 마주할 시간이 모두 소중함을 일깨워주시는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이 시간을 아무것도 기약할 수 없는 때가 아니라, ‘끝을 내다볼 수 있는 희망의 시간’으로 만들어주고 계시는 많은 분들, 감염사태에 맞서 싸우고, 생명을 구하기 위해 고난과 희생에 동참하는 모든 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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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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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을 내다볼 수 있는 희망의 시간"을 위하여 우리 모두 힘을 내어 보죠.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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