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의 의로움이 …… 않으면”(마태 5,20)
유대교에서부터 그리스도교에 이르기까지, ‘의로움’이라는 것은 삶의 중요한 목표요 화두였습니다. ‘의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 곧 ‘구원’과 직결되기 때문인데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의로운 사람인가의 여부를 누가 판단하느냐입니다. 이 ‘의롭다’는 것은 스스로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로부터 의롭다고 인정받는다’는 개념입니다. 비록 사람의 행실을 보고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안다는 말도 있지만, 일순간의 어떤 행위 자체를 놓고 의롭다거나 그렇지 못하다를 판가름할 수는 없음을 먼저 생각하게 됩니다.
오늘 복음 말씀에서 예수님께서는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이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고 하십니다.그러면서 살인 뿐만 아니라 형제에게 성을 내거나 바보, 멍청이 등의 폭언을 행하는 것조차 의롭지 못한 일이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해보지 않은 일이라 쉽게 단언할 수는 없지만, (정당방위등의 우발적이고 부득이한 극소수의 경우를 제외한다면) 사람이 살인하고자 마음먹거나 실제 행위로 옮기는 데에는 ‘저 사람은 죽어도 돼’라는 판단이 담겨있을 것입니다. 사실 작금의 감염사태 속에서도 때로 보편적 기준이 무너지는 모습들을 볼 수 있습니다 : 어느 국적자는 감염에 노출되어도 되지만, 어떤 국적자는 보호받아야 된다는 등, 어떤 집단이나 지역 출신, 특정 연령층 등만 의료혜택이나 우선적 보호를 받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등……
누구는 죽어도 되는 하찮은 삶이고, 누구는 그렇지 않다고 우리 가운데 누가 쉽게 단정짓고 판단할 수 있겠습니까마는, 모든 이의 생명이 똑같이 소중하다는 이 당연한 원칙도 어느 사람의 판단 속에서는 지켜지지 않음을 봅니다.
그러므로 살인 뿐만 아니라, ‘형제’(복음은 그냥 어떤 사람이 아니라, 형제라고 말합니다. 나와 관계있는 자, 나와 사랑을 주고받으며 더불어 살아가는 자이겠지요)에게 퍼붓는 폭언에 이르기까지, 그를 하찮은 존재로 폄하하고 간주하는 행위 또한 그 사람보다는 자신이 의로움의 측면에서는 우월하다는 자기판단에 빠짐으로써, 하느님께로부터 인정받아야 할 의로움이라는 것을 자신이 규정하는 잘못을 범하는 행위인 것입니다.
‘Agere sequitur Esse’(행위는 존재에 따른다)는 철학적 명제처럼, 분명 행위는 그가 누구인지를 드러내는 열매입니다. 하지만 이는 그 행위만으로 우리가 누군가를 판단할 권리나 권한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 자신이 어떤 행위나 겉치레, 요식행위를 했다는 것만으로 하느님 앞에서 의로운 사람이 될 수 있다는 형식주의의 함정에 빠질 수 있는 위험요소가 있습니다.
우리가 의로운 행위를 하는 이유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어여삐 보아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의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우리의 의로움을 하느님께 인정받기 위해서, 우리 자신이 불의함 앞에서 심판자가 되어버려 쓸데없이 난폭하거나 과격한 행동으로 죄짓는 일을 피하도록, 특히 일상 안에서 반복될 수 있는 ‘판단의 유혹’ 앞에서 회개의 열매를 맺을 수 있기를 다짐하고 또 노력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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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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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로움이 교만하지 않고 항상 주님 뜻 그대로이기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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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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앎이 행동으로 오는데 얼마나 걸릴까요~
그저 오래도록 머금은 향기로 그득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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