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신자인 배우자와 혼인생활을 하다가 나중에 관면혼인을 위해 신부를 찾아오는 부부들이 종종 있습니다. 그 가운데 신자인 배우자가 간절히 원하고 또 권함에도 불구하고 비신자인 배우자가 관면혼인을 위해 성당을 찾는 것을 완강히 거부하는 바람에 관면혼인을 하러 신부를 찾아오기까지 너무나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경우도 심심찮게 있습니다.
이런 때에, 다른 신부님들은 어떠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혼인면담을 하면서 약간은 비굴해지는 듯한 느낌이 있습니다. 어떻게든 이 완고한 사람을 잘 달래가면서 면담과 혼인예식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 가톨릭교회 신자들은 혼인성사를 통해, ‘스스로 신앙을 지키고 자녀들에게도 신앙을 물려주도록 한다’는 약속을 합니다. 이 대목에서는 저는 좀 덜 비굴하게(?) 이야기를 합니다 : ‘비신자인 당신이 이해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신자인 배우자가 하느님을 믿는 것이 옳고도 좋은 일이라고 알고 있으며, 적어도 부모의 마음으로 생각해 볼 때, 자녀들에게 “좋은 것이라면 물려주고 싶은” 마음은 다 있을 것 아닙니까?’ 라고요.
대부분이 가톨릭이나 혹은 종교라는 것에 대하여 부정적인 경험이나 선입견을 가진 경우가 많은데, 이분들의 대다수는 ‘종교는 자기가 스스로 선택해야 하는 것’이라는 이유로 자녀들에게 신앙을 물려주는 것을 약속하기를 꺼려합니다. 그러나 신앙이 정말 사람답게 필요하다면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물려주고 싶어지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고 또 사랑임은 부인할 수 없겠지요. 누군가의 부모인 사람이 살기좋은 세상을 만들기 원한다고 말한다면, 이는 자신과 그 세대가 살기좋은 것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내 자녀들이 살기좋은 세상'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당연히 품고 있듯이 말입니다.
오늘 독서에 나오는 솔로몬은 가장 강력한 통치권을 행사한, 이스라엘 역사 안에서 최전성기를 구가했던 인물입니다. 그러나 그는 말년에 우상숭배를 허용합니다. 많은 이민족 부인들의 청탁, 자신을 성가시게 구는 복잡한 일들 앞에서 적당히 타협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소위 정치적으로는 현명해 보이는 일일지는 몰라도, ‘이스라엘의 모든 축복과 번영은 하느님께로부터 주어진 것’이라는 시나이계약 혹은 율법의 정신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습니다. 이때에 솔로몬이 보이는 모습은 자녀의 시대에 살기좋은 나라, 하느님을 믿으며 그 축복 속에 사는 세상을 물려주는 데에 별 관심이 없어보입니다. 솔로몬은 자녀에게 물려줄 좋은 세상보다는 지금 자신의 여생이 더 중요했고 그것을 더 사랑했던 듯 보입니다.
반면 오늘 복음에 나오는 시리아 페니키아 여인의 모습은 이와 대조적입니다. 그녀는 이민족이었음에도, 마귀를 쫓아내어 자기 딸을 구해주실 수 있는 하느님의 능력을 굳게 믿었고, ‘부스러기 만큼의 은총’으로도 구원받을 수 있다는 강한 믿음을 보입니다. 이 여인은 단순히 딸을 구하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고 노력하는 처절한 모성애만 보인 것으로 그치지 않고, 분명 자녀들이 하느님을 믿고 살아가도록 은총의 기억과 믿음의 확신을 심어주고자 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믿으며 산다고 하는데, 과연 우리에게 있어 신앙은 위의 두 사람 가운데 누구의 것과 더 닮아있습니까? 진정 사랑하고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누군가에게 꼭 전해주고 물려주고 싶을 만큼, 그렇게 하느님을 믿으며 산다는 것이 우리에게는 중요합니까? 또 그 신앙을 물려주기 위해서 자녀들의 신앙을 돌보고자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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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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