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으로 충분합니다
아침부터 일한 일꾼들, 샘이 날 만도 합니다. 하루 종일 일해야 받을 일당을 저녁 무렵에 잠시 일한 이들이 챙겨갑니다. 이른 아침부터 포도밭에서 일한 이들은 힘이 빠집니다. 그들은 포도밭 주인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하루 종일 일한 사람과 한 시간만 일한 사람의 보수가 같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불의한 일 같습니다.
하지만 샘을 낼 이유는 없습니다. 포도밭 주인이 종일 일하기로 한 사람에게 약속한 일당은 한 데나리온이었습니다. 그는 약속대로 한 데나리온을 줍니다. 더 받겠거니 생각한 것은 그들의 기대일 뿐이지요. 그들은 약속보다 적게 받은 게 아닙니다. 포도밭 주인은 모두에게 약속을 지켰습니다. 어떠한 불의도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셈을 하니 샘이 나는 것입니다. 받은 것에 비해 준 것을 더 크게 기억하는 습성, 그리고 그 습성에서 나오는 셈법이 하느님과의 관계에서도 불거져 나옵니다. 인간이 자기가 쌓은 공덕으로 하느님과 셈하려 드는 순간, 사랑의 관계는 무너집니다. 사랑은 무언가를 바라지 않습니다.
8세기 수피의 현자, 라비아는 이런 기도를 남깁니다.
‘오, 주님. 제가 주님을 섬김이 지옥의 두려움 때문이라면 저를 지옥에서 불살라 주시고, 낙원의 소망 때문이라면 저를 낙원에
서 쫓아내 주소서. 그러나 그것이 오로지 주님만을 위한 것이라면 주님의 영원한 아름다움을 제게서 거두지 마소서.’
신을 향한 사랑 안에서 다른 대가를 바라지 않는 그녀의 순수함은 종교의 차이를 넘어 우리에게도 전해주는 바가 큽니다.
사랑은 보상을 바라지 않습니다. 보상이 주어지지 않아도 하게 되는 것이 사랑이고, 그런 사랑만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이것이 사랑이 힘든 이유이고, 우리가 사랑을 위대하다고 말하는 이유입니다. 아무런 대가없이 희생하고 자신을 내어놓는 비범한 행위, 그를 통해 체험하는 기쁨이 사랑의 보상이라면 보상일까요? 다른 보상은 없습니다. 다른 보상을 바라는 순간, 사랑은 일종의 거래가 되고 희생은 고역이 됩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다른 목적과 속내가 있을 수 없습니다.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의 말씀처럼, ‘오직 하느님으로 충분(Solo Dios basta)’합니다. 하느님을 가지면 다 가진 것입니다. 하느님 외에 다른 보상은 없습니다. 오늘 복음의 일꾼들처럼 더 받을 것이 없는지 셈을 해서 될 일이 아닙니다.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허찬욱 도미니코 신부
(2017년 9월 24일 연중 제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