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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요구되는 순교는 희생이다

 

우리는 스스로 순교자의 후 손이라 말합니다. 순교자의 후손으로 그 정신을 이어받았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순교자의 후손으로 그 정신을 이어받은 우리는 ‘순교’를 어떻게 실천할 수 있겠습니까?


‘순교’라는 말을 할 때 보통 죽음을 떠올리게 됩니다. 죽음으로 증거한 신앙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 순교자들은 결코 죽음만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죽음으로 우리 신앙을 살리셨습니다. 그냥 용감하게 죽음을 맞이한 것만이 아니라 죽음으로써 살리십니다. 어떻게 죽었느냐 하는 문제보다 무엇을 살렸느냐 하는 문제가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더 이상 옛날과 같은 순교가 요구되지 않습니다. 그럼 순교는 옛날이야기일 뿐입니까? 아닙니다. 지금 우리에게도 순교는 계속되어야 합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우리의 순교자들이 죽음으로 우리 한국 교회의 신앙을 살리셨듯이, 우리 역시 이 교회와 이 세상을 살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죽어 가는 것을 살리는 일에 앞장서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에게 요구되는 순교입니다.


지금 우리 주위에 죽어 가는 것은 무엇입니까? 첫째, 하느님의 빛이 점점 죽어 가고 있습니다. 하느님께 의지하며 하느님의 뜻대로 살아가기가 쉽지 않는 요즘입니다. 하느님 자리를 다른 무언가로 대신 채우려고 하는 이때, 하느님께서는 우리 안에서 점점 사라져 갑니다. 둘째, 사람이 죽어 갑니다. 이익을 위해, 손해를 받지 않기 위해 사람은 어느새 수단이 되어 버립니다. 이제 사람은 죽음에 내몰리기도 하고, 고통과 무관심 속에 스스로 죽기도 합니다. 이렇게 사람이 사람답게 살지 못하고 죽어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셋째, 자연이 죽어 갑니다. 우리는 늘 한결같은 햇살과 적당한 비를 기대하지만 이미 무분별하게, 무절제하게 사용해서 죽어 가고 있는 자연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 주위에는 죽어가는 것 투성입니다. 이렇게 죽음이 힘을 키울 때 그것에 대해 깨어 저항하고 생명을 지켜내려 하는 것, 바로 그것이 우리에게 요구되는 순교입니다.


이러한 순교를 실천하기 위해서 예나 지금이나 꼭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희생’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자기 십자가를 기꺼이 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속에서 사라져 가는 하느님을 잃지 않기 위해서, 사람이 사람답게 살도록 하기 위해서, 또 우리가 사는 이 땅을 오랫동안 잘 유지하기 위해서 우리 각자의 ‘희생’이 필요합니다. 내가 좀 불편하더라도, 내가 좀 부담되고 손해 보더라도, 좀 돌아가는 길이라도 희생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러한 희생이 하나 둘 모여 우리 주위에 죽어 가는 것들을 살릴 수 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위대한 순교자들의 자랑스러운 후손입니다. 선조들이 죽음을 선택함으로써 우리에게 물려주었던 그 신앙을 이젠 우리가 생명을 위한 희생을 선택하여 우리의 후손들에게 당당히 물려줍시다. 이번 한 주간 큰 것이든 작은 것이든 희생할 수 있는 용기를 결심합시다.

 

고아본당 주임 최호 요한보스코 신부

(2017년 9월 17일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경축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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