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
강아지. 왠지 귀여워 보일 수도 있지만, 한마디로 욕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인들을 보며 업신여기며 하던 말이지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스스로 하느님의 자녀라고 여기는 선민의식이 강했습니다. 같은 민족인 사마리아 사람들도 이방인들과 섞여 살며 그들의 문화를 받아들였다고 멸시하며 가까이 지내지 않았는데, 이방인이라면 더더욱 상종 못할 것들로 취급했지요. 그래서 자신들은 하느님의 자녀라고 여겼지만, 이방인들은 개의 새끼들로 취급하며 업신여겼습니다.
어느 곳, 어느 시대나 끼리끼리의 문화가 있고 텃세가 있습니다. 현대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학교에서 어린 학생들도 친구사이에 왕따 시키는 무리가 있고, 직장 안에서도 ‘우리가 남이가!’ 라는 문화가 강합니다. 시골 마을에도 텃세가 심해 귀농한 사람들은 이방인 취급을 당할 때가 많습니다. 심지어 성당 안에서도 새로 세례를 받았거나 다른 본당에서 이사 온 사람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분위기가 있지요. 그러니 외국인 노동자들을 무시하는 건 오히려 당연해 보입니다. 친목을 나누는 이웃 안에서도 잘 어울리지 못하거나, 꼴불견인 사람은 따돌림을 당하기 일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시의 이런 문화와 사회 분위기를 잘 아셨을 겁니다. 그래서 대다수의 이스라엘 사람이라면 그랬을 것처럼 당신께 청하는 그 이방인 여인을 무시하고 모욕을 주었습니다. 아마 시험하셨겠지요. 그러나 이방인 여인의 대답은 예수님도 놀랄만한 것이었습니다.
“주님,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이방인 여인은 자신을 개처럼 여기며 무시해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존심도 던져버리고 자신을 낮추어 바닥에 내던졌습니다. 그래도 아무렇지 않았던 것은 간절한 바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사랑하는 딸아이의 치유였습니다.
따돌림과 차별이 만연한 세상을 바꾸는 힘은 바로 “사랑”과 “간절함”입니다. 주위의 눈총과 수군거림이 있었지만, 자신을 강아지로 여기는 멸시와 조롱이 있었지만, 그 모든 걸 참고 이겨낼 수 있었던 힘은 아픈 딸에 대한 사랑과 예수님께서는 치유해주실 거라는 믿음과 간절한 마음이었습니다. 그 힘이 예수님을 감동시켰고, 마침내 기적을 가져왔습니다.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
우리의 “간절함”은 무엇인가요?
그 간절한 바람을 이루기 위해 나는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돌아봅시다.
교구 문화홍보실 실장 최성준 이냐시오 신부
(2017년 8월 20일 연중 제 20주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