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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피한 일들

 

살다보면 창피하고 부끄러움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어릴 때, 다른 아이들은 계란에 소시지 반찬을 사오는데 나는 늘 풀죽은 김치를 도시락 반찬으로 싸가야 했을 때 왠지 점심시간에 도시락 내놓기가 부끄러울 때가 있었습니다. 지금 같으면 7남매 키운다고 정신없으신 어머니께서 그래도 새벽처럼 일어나 정성스럽게 싸주신 도시락을 감사하게 먹었을 텐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신학생 시절, 제가 소위 말하는 ‘개발’이라 축구를 잘 못했습니다. 그게 창피스러워 일부러 아프다고 빠진 적이 많았습니다. 지금 같으면 ‘개발’ 축구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지, 나도 웃으면서 공을 찰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학교 소임을 맡아 학생들에게 첫 강의를 할 때, 하도 긴장해서 말도 더듬고 학생들 질문에 거의 울상이 되어 수업을 마치고 나서, 너무도 부끄러워 그날 저녁 술을 진창 마신 기억이 납니다. 시간이 흘러 경험이 쌓이니 학생들을 야단치며 공부하라고 독려하기도 했지만, 처음 강의를 할 땐 정말 하루하루가 두렵고 제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요즘도 부끄럽고 창피스러울 때가 있습니다만, 허허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기고 나면 잘 기억이 나지 않을 때가 더 많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어릴 적 혹은 젊을 때 부끄럽고 숨기고 싶었던 나의 모습, 행동이 없었는지요? 우리 모두는 단점 많고 부족한 인간입니다. 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숨거나 낙담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우리들, 때론 돌밭 같고 때론 가시덤불 같으며 때론 태양 아래 아스팔트 같은 부족한 우리들에게 당신 능력의 씨앗을 뿌려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돌밭을 고르고 가시덤불을 쳐내고 우리가 좋은 땅이 되었을 때 당신의 생명의 씨앗을 뿌리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나의 모습 안에서 활동하시고 함께하십니다.

 

우리가 체험을 통해 부끄럽고 후회스러운 일들을 극복해 나가고 시간이 지나면서 아픔을 치유해 나가듯, 영적인 성장도 마찬가지입니다. 돌밭 같은 나의 마음에 씨앗이 떨어져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의 어린 영혼의 체험을 통해 용서와 이해의 폭을 또 키워나갑니다. 조급하게 서두르거나 반대로 나태하게 쉬지 않으면서 우리의 영적인 체험들을 통해 한걸음씩 주님께 나아갈 때, 우리도 어느덧 백 배, 예순 배, 서른 배의 말씀의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가 ‘잘하지 못한다는 것’, 우리가 ‘부족하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아시는 주님이십니다. 주님께 겸손하게 손을 내밀고, 온전히 당신이 내 안에서 활동하시길 간절히 청하도록 합시다.

 

“내 도움은 주님에게서 오리니 하늘과 땅을 만드신 분이시다.” (시편 121,2)

 

모화본당 주임 김성근 요셉 신부

(2017년 7월 16일 연중 제 15주일, 농민 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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