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의 라틴어권 국가들인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같은 곳에서 ‘고맙습니다’(스페인어 gracias, 이탈리아어 grazie)라는 말은 라틴어 ‘gratia’라는 말에서 어원을 찾습니다. ‘gratia’는 ‘선물, 호의’ 등으로 번역되며 하느님의 선물 곧 ‘은총’을 뜻하기도 합니다. 선물, 호의, 은총 등이 시사하는 공통점은 ‘거저 받았다’는 것입니다. 내가 어떤 요건을 충족시켰다거나 자격을 갖추어서 얻는 것이 아니라, 그런 자격이 없다 할지라도 상대방이 나에게 잘 해 준 것입니다. 그러므로 “감사함”이란 그렇게 ‘거저 받았음’을 인정하는 것이며, 진정으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는 것은 내가 이미 받은 호의(好意)를 갚아나가는 마음으로 사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보게 됩니다.
오늘 복음 말씀에 나오는 ‘무자비한 종’은 “빚진 사람”(마태 18,24)이라고 합니다. 그는 만 탤런트나 되는 큰 빚을 탕감, 곧 ‘거저 변제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그것을 자신의 노력으로 다 상환한 사람처럼 굽니다. 그러니 고마움은 온데간데 없고, 자비심이란 찾아볼 수 없는 오만한 자의 모습으로 친구에게 군림합니다.
복음의 이 비유말씀을 통해 우리가 보여야 할 ‘자비심(慈悲心)’은 감사함의 표현이며, 하느님의 은총에 대한 믿음을 가진 신앙인이 하느님 아버지께 은총을 받았음을 증거하는 표현임을 생각해봅니다. 언제인가부터 소위 ‘갑(甲)질문화’라는 용어가 생겨났고, 참 안타깝고 어이없다 싶은 사람들의 ‘갑질’이 심심찮게 등장하는 가운데 이 ‘자비심’이 새삼 더욱 그리워집니다. 또한 그러한 사람들의 너그러움에 기생(寄生)하거나 그런 자비심을 이용하려 드는 이기심어린 유혹으로부터도 더욱 당당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이밖에도 일일이 다 나열할 수 없는 수많은 노력들이 더해져야 우리는 진정으로 ‘자비하신 하느님 아버지’를 닮은 자녀들이 될 수 있는 것이고, 그렇기에 형제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마태 18,22)는 말씀의 뜻을 좀 더 깊이있게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들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