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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강론

  제가 지금 한국에 와 있다 보니, 북경에 있을 때는 잘 보지 못했던 한국 방송 프로그램을 시청할 기회가 가끔 있습니다. 사실 북경에서 이런 볼거리가 없지는 않지만, 한국에서 TV를 시청하며 가장 눈에 띄는 차이점은 바로 ‘광고’입니다.

요즘 한 제약회사에서 위생관련제품을 생산하며 이에 대한 광고를 내보내는데, 처음 시작하는 문구는 이런 질문입니다 : “왜 손을 씻어야 할까요?” 

다음 장면에서 어린 여자아이가 손을 씻으며 대답합니다 : “엄마가 씻으래서요.”

 

  비단 이 어린이가 아니더라도 많은 장면에서 아이들이 하는 대답입니다. 그네들은 “왜?”라는 물음을 던지지도, 그 물음에 답이 얻어지지 않더라도 부모님이 하라시면 그렇게 합니다. 나중에 머리가 좀 굵어지면 태도가 달라지기도 하지만요……

   왜 어린이들은 이유도 모르는 일을 그냥 해나갈까요? 모두가 아시다시피 그 답은 ‘부모님이 내게 해로운 일을 시키실 리 없다’는 믿음입니다. 그리고 이 믿음은 젖먹이때부터 부모님의 사랑과 보호 속에 성장하며 자연스레 체득(體得)된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신앙인이고, 믿음을 지녔으며, 또한 믿음을 길러서 자기완성을 이루려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 믿음이라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내가 선택한 옳은 것 혹은 선한 것’일 수도 있고, 때로는 이해하거나 납득하기 어려운 규정이나 장면에서는 ‘이 부분은 인정하거나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바꿔 말하면, ‘왜?’라는 질문에 대한 스스로 수긍이 가는 해답, 정답을 얻을 수 없다면 믿지 못하는 모습으로 살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무엇인지를 깨닫고자 하는 열의(熱意) 때문에 해답을 찾고싶어 하는 갈증을 느끼는 사람도 있지만, 교회의 전통에서 말하는 ‘믿음은 은총으로 주어지는 것’(티토 3,7 : “우리는 그분의 은총으로 의롭게 되어, 영원한 생명의 희망에 따라 상속자가 되었습니다.”)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한 채 믿음의 생활을 영위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이러한 의혹이나 이해할 수 없음이 믿음을 잃어버릴 유혹이 되지 않기 위해 필요한 자세 중의 하나가 바로 ‘하느님의 뜻을 올바로 해석한 것이라면, 이는 진정 우리의 구원에 도움이 되는 것이므로 따라가 볼 만 할 것이다’는 신뢰어린 시선입니다. 마치 어린아이가 ‘엄마가 씻으래서’ 손을 씻는 것처럼 말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 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다”(마태 18,4)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과 그분의 뜻 앞에서, 어린이의 그 믿음을 잃지 않는 것이 바로 ‘하느님 앞에서’ 자신을 어린이처럼 낮추는 것임을 묵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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